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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시간으로 4월 11일 워싱턴DC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는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지 40여 일 만의 만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수석보좌관회의를 통해 “이번 방미(訪美)는 미·북 대화 동력을 빠른 시일 내에 되살리기 위한 한·미 간의 노력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며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길을 찾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미국과 북한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던 정부가 이제는 ‘촉진자’가 되겠다며 팔을 걷어붙인 모양새다. 하지만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무엇보다 하노이회담 결렬 이후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한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 마련에 앞서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복원하고 다지는 회담이 우선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 정부는 그동안 포괄적 합의·조건부 단계적 제재 완화를 골자로 하는 이른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의 필요성을 강조해왔지만 ‘일괄타결 식 빅딜’을 주장해 온 미국 정부·의회 분위기와는 결이 달라 이번 회담에서 공감을 살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궁극적 목표 달성 전에 대북 제재 해제는 없다는 우리 행정부 정책은 매우 분명하다”며 부분적 비핵화에 따른 선제적인 보상 제공은 이뤄질 수 없다고 선을 분명히 그은 것을 보면 미국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남북문제의 ‘촉진자’ 역할이 아니라 한·미동맹의 ‘신뢰성’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확고한 태도를 보여주기를 바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북한은 줄곧 즉각적이고 전격적인 핵 폐기가 아닌 동결, 유예, 봉인 등으로 핵 협상 단계를 최대한 세분화해 쟁점화하는 ‘살라미 전술’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 왔다. 그 결과 북한이 6자회담에서 양보한 것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의 폭파에 불과하였고, 그 대가로 80만 톤의 중유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2012년 이후 북한의 탄도미사일 실험 횟수가 80차례 이상이었으며, 영변 핵시설에 1개 이상의 원심분리기 농축시설이 가동되고 있다는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발표만 봐도 제재를 먼저 풀면 북한이 비핵화에 나설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기대는 미국과 전혀 다른 목표 설정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 정상이 군사분계선에서 악수를 나눴지만 여전히 통일은 멀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된 한반도는 종전(終戰)이 아닌 정전(停戰)상태다. 북한은 그간 남북협상 합의 파기 후 군사적 긴장 고조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지속적으로 반복해 왔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에도 재작년까지 북한은 45만여 건의 정전협정을 위반했으며, 이 가운데도 무력도발만 470여 건을 넘는다. 따라서 북한의 남침과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기초로 형성된 한·미동맹의 균열은 한국의 안보는 물론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일 신년사에서 미국의 일방적인 대북제재와 압박이 지속될 경우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북 협상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중국이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데 기여한 중국식 ‘양탄일성(兩彈一星)’전략을 택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곧 북한 비핵화 문제의 장기화를 의미한다. 한·미가 동주공제(同舟共濟)하는 마음으로 동맹의 결속을 강화해야 한반도 비핵화도 힘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한미 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말끔히 해소하고,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 간 공조체계를 더욱 강화하는 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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