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가면
피에 겨운 어린 내가 있고
고향에 갔다 오면
나는 백 년 늙는다네
어째서 골목은
작아지는 일에만 몰두했는가
고향에 갔네
고향은 다 끝난 자세로
죽은 혈족들처럼 무뚝뚝하고
무엇이 지나갔는가
사나운 사내가 어깨를 치고 가는 거리에서
무슨 간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나는 아무리 가도 때늦은 사람
부르는 목소리 하나 없이
바삐 바삐 올라오는
나는 서울이라는 발굽을 가진 사람
가지 않고 오기만 하는 사람
영 글러먹은 사람




<감상> 고향에 가면 추억에 젖은 어린 내가 있고, 초라한 빈집들이 있어 죽은 혈족처럼 황량하기 그지없다. 정겨운 사람들과 풍성한 들판과 집으로 향한 길과 시끌벅적한 골목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고향에 갔다 오면 오히려 나는 더 늙어 버리고 답답한 마음만 가득하다. 도시 사막에서 나는 간판을 찾아 헤매고 빨리 가려해도 때늦은 낙타가 된다. 부르는 사람도 없는데 서울로 올라가야만 하는 도시의 발굽을 지니고 있다. 그 발굽이 아직 단단하지 못하므로 영 글러먹은 사람이 되고 만다. 고향의 물 냄새와 서울이라는 발굽을 둘 다 지녔지만 영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주변인으로 살고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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