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선경주초등 교사

저물녘의 황룡사지는 쓸쓸하여 좋다. 마음의 빈자리처럼 공터가 주는 적막감이 가을을 느끼게 한다.

한없는 적요가 가을 햇살 아래 탑처럼 쌓이고 있다. 여백이 있는 그림처럼 절이 사라지고 없는 절터는 스스로를 비움으로서 바깥의 것들을 안으로 불러들인다. 무한천공 아래 우뚝 솟아 있었을 구층 목탑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멀리 송화산 너머로 넘어가는 가을햇살이 하늘을 물들이는 장관을 볼 수 있는 곳도 이 곳이다. 들녘을 지나오는 가을바람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사방이 열려 있어 숨통이 트이는 곳이기도 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푸른 잔디밭에 앉아 먹이를 구하던 백로 식구들이 먼 길을 떠났는지 보이질 않는다. 텃새들인 까치들만 감나무 주위에서 깍깍거린다.

발굴 때 나온 돌을 쌓아 만든 돌담길을 따라 걷는 맛 또한 일품이다. 여럿이 함께 보다는 혼자 걷기 좋은 길이다. 바랭이와 강아지풀, 여뀌꽃이 끊임없이 말을 걸어온다. 겨울이면 빈 들녘이 월동초 푸른 잎사귀들로 가득해질 것이다. 고인돌이 있는 한쪽엔 이웃들이 가꾸는 푸성귀 밭이다. 빈 땅에 씨앗을 묻고 가꾸고 싶어 하는 마음을 누군가 읽었나 보다.

당간지주 아래 거북이 발톱을 누가 깎았는지 발이 사라지고 없다. 거북이가 움찔 놀라 목을 움츠린 듯한 형상이다. 단단한 화강석 불상의 목을 쳐 분황사 우물에 빠뜨렸던 그 시대에 이 거북이도 발가락을 잃은 듯하다. 찬란했던 어느 한 시절엔 깃발을 매달았을 자리, 옛 영화를 말하려는 듯 빈 터에 당간지주만 돌탑처럼 우뚝 솟아있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가을빛이 역력하다. 깨어진 기와편이 드문드문 돌담 위에 얼굴을 내밀고 있다. 솔거의 노송도가 그려진 담벼락이 있었다는 금당터가 눈에 들어온다. 실물과 너무나 흡사하여 참새가 솔가지에 내려앉으려다가 담벼락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황룡사지. 전설처럼 깊어 가는 황룡사지 긴 회랑을 따라 걷고 또 걷는다. 이 길을 따라 걷고 또 걸으면 신라의 마을에 가 닿을 것만 같다.

긴 회랑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남쪽 기슭에 가 닿는다. 호박 넝쿨이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 듯 밭두렁을 따라 길을 내고 있다. 낼 모레면 서리가 내릴 텐데 허공 속으로 내미는 덩굴손을 이쯤에서 잡아주고 싶다.

여뀌꽃이며 며느리 밑씻개풀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들길을 걸어 미탄사 삼층 석탑 있는 곳까지 이어지는 가을 들녘은 금관 빛이다. 치매에 걸린 듯 있던 자리를 잃어버린 돌들이 옛 추억을 말하듯 즐비하다. 언제쯤 저 수많은 돌들이 제 자리에 놓일 수 있을까?

기억의 편린에 기대듯 논두렁길을 따라 걸으며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옛길을 더듬어 본다. 분황사에서 황룡사로 다시 미탄사로 이어지는 옛길은 몇 세기를 오르내린다. 수많은 절을 짓고 탑을 쌓은 그들은 저 가을하늘처럼 마음의 번뇌를 걷어내었을까?

잔디밭에 주춧돌이 뿌리를 내리듯 하늘에 희미하게 박혀있던 낮달이 시간이 지날수록 모습이 또렷해진다. 가로등 불빛이 어느새 감처럼 발그레 익어가는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여뀌꽃도 며느리밑씻개 풀도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땅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초석들이 많은 말을 대신하고 있다. 초석 위에 얹었던 아름드리 기둥의 흔적이 방석처럼 남아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의 주인공이었던 경문왕 대에 탑을 수리하였다는 문구가 박물관에 보관중인 찰주본기에 남아있다.

무엇을 두고 갈 것인가? 묻고 대답하며 오랜 시간을 서성이었다. 나의 흔적이란 나의 발자국이란 그저 돌담 위에 뒹구는 저 작은 돌멩이 같거늘. 빈터에 내려앉은 가을 햇살처럼 내내 따사롭고 싶다.

마음의 공터에 언제 적 것인지 주춧돌이 앉아있다. 아직 모양을 더러 내지 않고 있어 그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 내 안에도 그리움이 탑 한 채 지을 것 같다. 사랑도 그리움도 쌓으면 탑이 되는 까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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