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은 없었다."

20일 오후 서울 잠실 올림픽경기장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당내에선 `예고된 승리'였다는 평가가 주조를 이뤘다.

지난해 9월 말 이후 단 한 순간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여론조사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던 만큼 오늘의 승리는 여론조사를 다시 한번 입증하는 절차에 불과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 전 시장이 대권행보에 본격 나선 것은 지난해 6월 말 서울시장에서 물러나면서부터. 이때까지만 해도 지지율 20% 안팎의 이 전 시장이 20% 중후반대를 달리던 박 전 대표의 철옹성을 무너뜨리는 일은 매우 지난한 도전이자 과제로 보였다. 박 전 대표가 장장 2년3개월 동안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재.보선 선거에서의 승승장구를 통해 `당심'(黨心)을 완전히 장악해 놓았던 터라 더더욱 그랬다.

1차 시련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왔다. `이명박-박근혜 대리전' 구도에서 치러진 지난해 `7.11 전당대회'에서 자신을 대리하는 이재오 최고위원이 박 전 대표를 등에 업은 강재섭 대표에게 석패한 것.

하지만 이 전 시장은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1년 2개월간의 기나긴 경선 대장정을 위해 한 발짝 먼저 움직였다.

그해 7월 초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안국포럼'이라는 선거캠프를 연 이 전 시장은 국제전략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BSI) 등 서울시장 때부터 준비해 온 매머드급 정책자문단을 발족시키며 정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8월부터는 부산 을숙도 공원을 시작으로 낙동강과 한강 유역을 일일이 답사하며 넘버원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알리기에도 적극 나섰다.

꿈쩍 않던 지지율은 9월부터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 10월 초 추석연휴를 지나면서 완전히 역전에 성공했다.

이 전 시장의 최대 지지층인 수도권 30, 40대 직장인들의 입을 통해 전파되는 `구전효과' 덕을 본 것이다. 아울러 추석 직후 터진 북한의 핵실험도 이 전 시장에겐 호재가 됐다. 유권자들이 안보위기 상황에서 여성인 박 전 대표 보다는 강력한 추진력을 갖춘 이 전 시장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지지율이 수직 상승한 것.

여기에다 10월 말 유럽 대운하 탐사를 통해 대운하 공약을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하면서 대대적인 표쏠림 현상이 일기 시작했고, 이에 힘입어 지지율은 금세 40%를 돌파해 연말에는 50%까지 육박했다.

올 2월 설 연휴 직전 이 전 시장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를 지낸 김유찬씨가 과거의 선거법 위반 전력과 범인도피 의혹을 전격 폭로하면서 2차 위기를 맞는 듯 했으나 다행이 큰 충격없이 고비를 넘겼다.

4.25 재보선 참패 직후 불거진 지도부 총사퇴론과 뒤이어 터진 `경선 룰' 파동은 당권을 장악하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위기에 몰린 강재섭 대표 체제를 인정해 주면서 1차 양보를 하고, 강 대표가 5월 제시한 경선 룰 중재안을 전격 수용해 2차 양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당심을 확실한 우군으로 만든 것. 여기에다 여론조사 하한선 보장 문제를 놓고 뒤늦게 논란이 일었을 때도 대승적 차원을 명분으로 당의 결정을 수용함으로써 실익까지 챙겼다.

본격적인 위기는 범여권과 박 전 대표측의 검증공세가 본격 시작된 6월에 찾아왔고, 이후는 악재의 연속이었다.

6월11일 당 경선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하자 마자 30여년 전 자녀교육 관련 위장전입 사건이 터졌고, 뒤이어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도곡동땅' 차명재산 의혹이 불거지면서 좀체 꺾이지 않던 지지율은 조정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대운하 공약이 난도질을 당하면서 더블스코어, 한때 3배 이상 벌어졌던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는 한 자릿수대로 좁혀졌고, 심지어 일부 조사에선 격차가 4∼5%까지 줄어들었다.

여기에다 7월 검증청문회와 13차례의 지방 합동유세 및 8차례의 공개토론회에서 `약점'이 집중 노출되고 김재정씨가 검찰에 출두하는 모습이 여과없이 방영되면서 막판에는 지지율이 역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흘러나왔다.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경선 1주일 전, 검찰이 지난 13일 이 전 시장의 맏형 상은씨의 도곡동땅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다음 날 "추가자료를 공개할 수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쏟아내면서 "이명박은 끝났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감돌았다.

하지만 이 전 시장은 경선 사흘 전인 16일 검찰을 향해 "협박하지 말고 다 공개하라"며 정면돌파 카드를 선택했고, 때마침 검찰이 꼬리를 내리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검풍'(檢風)은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작용했다.

결국 결전의 날인 19일 승리의 여신은 이 전 시장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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