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환(편집위원)

이번 두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우리가 북한의 개혁, 개방을 도와 북한 스스로 핵을 폐기하고 경제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남과 북 간 평화체제를 이룩하고자 하는 선의를 '남이 북을 흡수 통합하려는 숨은 전략'으로 북한 지배층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제정치의 역학구조상 설령 북한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난다 하더라도 중국이 건재한 한 남한의 흡수 통일은 불가능하다. 독일의 빅뱅 식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갑자기 구소련이 붕괴됐었기 때문이다.

남쪽 대통령이 말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서로간의 신뢰를 쌓아 가는데 기본 토대임에도 불구하고 등잔의 양쪽 밑이 가장 어둡듯이 남과 북은 그동안 서로를 불신해 왔다. 이를테면, 북이 '자주와 우리 민족끼리'를 말하면, 남은 '미군 철수와 적화통일의 야욕'을 들어내는 것이라고 의심했다.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 같은 의심은 국민적 공감대가 매우 넓었었다. 북한의 경제력이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고, 근접한 배후에 중국과 구소련이 버티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그런데 세상은 변했다. 20세기 세계사에서 공산주의적 독재체제의 맹주인 구소련은 스스로 무너졌고, 체제경쟁에서 자본주의적 민주체제는 완승을 거뒀다. 중국은 정치적으로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을 뿐이지,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로 길을 틀었다. 미국과의 공존을 모색하며, 한국과는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오고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 볼 때는, 미?중이 서로를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국은행의 남북한 간 경제비교자료를 보면, 2006년에 이미 남한의 총 국민소득(GNI)이 북한의 35배에 달하고, 1인당 소득 또한 17배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이면 이 격차는 40배 및 20배로 더 확대될 것이다. 최근년 영국의 군사전략연구소가 비교한 남북한의 군사비 지출을 보면, 남한은 약 250억 달러, 세계 8위로서 북한의 10배 이상이라는 것이다. 남한의 군사예산은 북한의 총 국민소득과 거의 맞먹는 액수다. 남한의 단독 전투지속능력이 3개월인데 비해 북한은 1개월도 채 안 된다. 북한이 체제유지를 위해 핵을 개발하게 된 동기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북한에 핵이 없고, 주변 열강들의 간섭만 없다면, 북은 남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얼마 전 중국이 동북공정의 역사왜곡을 추진할 때,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혜이룽장(黑龍江)에 북한을 더해 동북 4성을 만들고자 하는 장기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사실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커지고 있다. 북한 경제의 대중 종속이 65-70%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북한 관련 학자들은 추정한다. 아직까지는 얼마 안 되는 외국으로부터의 연간 대북한 투자(5천만 달러 내외) 중에서 중국 자본이 85%를 차지한다. 중국이 마음만 먹으면, 북한 내에서 친중 쿠테타를 획책해 북한을 동북 제 4성으로 편입시킬 수도 있다. 미?일과의 관계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측면이 강하나, 북한의 '자주와 우리 민족끼리'의 민족주의도 걸림돌이다.

중국은 미군과 직접 대치하는 걸 두려워한다. 미국도 전선에서 중국군과 마주 대하기를 원치 않는다. 19세기 구한말처럼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히고 있는 동북아에서 북한은 최적의 완충지가 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가장 두려워한다. 동해에서 일본열도와 대만 해협을 지나 동지나해에 이르기까지 해상 포위되는 걸 중국은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대만을 병합하고 북한을 완충지로 활용하는 걸 원한다.

북핵문제가 해결돼 북?미간에 수교하게 되면, 남북 간 화해협력과 평화체제 구축은 2차 정상회담의 합의문을 꿰뚫는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정신으로 한층 더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주변 강대국들은 어느 누구도 자기편이 된다는 확실한 보장이 담보되지 않는 한 한반도의 통일만은 원치 않을 것이다.

통일은 남과 북이 공동으로 열강들을 설득하여 달성해야 하는 난제다. 이때, 북한의 '자주와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이 남쪽의 '개혁, 개방 제의'의 선의를 수용하여 고립적이고 배타적인 요소를 극복하고 이웃과의 공존공영의 민족주의로 탈바꿈하게 된다면,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하게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1세기, 망한 체제의 적화통일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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