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숙<여성모니터회>

가을입니다.

소풍하기에 참 좋은 날씨,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기에 참 좋은 날씨 가을입니다. 가을단풍은 기온이 낮아지므로 인한 효소작용으로 녹색엽록소가 분해되고 그 속에 숨어있던 노랑, 빨강색들이 드러나면서 나뭇잎이 울긋불긋해지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다는 아닙니다. 울긋불긋해지는 가을 속에는 김밥도시락 들고, 콧노래 부르며 달려가던 가을소풍의 기억과 오래된 책 사이 삐져나온 마른 단풍잎 하나. 거기에 적힌 '오직 / 한 사람 / 당신만을 / 사랑합니다. '라는 절절했던 사랑의 기억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을 황금벌판의 품으로 달려가고 싶습니다. 소풍가고 싶습니다. 노란 은행잎 수북이 떨어져 쌓인 부석사도 좋고 상사화 붉게 핀 선운사도 좋을 듯합니다.

하지만 벌써 달려간 마음과는 다른 현실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어 슬픕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무르익은 별과 하늘과 바람을 노래하며 한 여름 작열했던 사랑을 풀어내듯 조용히 흔들리고 있는 이 가을에 지난 사랑의 추억 하나씩이라도 끌어안아 따스하고 싶습니다.

코스모스처럼 갈대처럼 흔들리지만 말고 바로 서 있어야 할 텐데 너무 빨리 다가오는 시간들에 무거운 맘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벌써 시월! 서너 달만 있으면 또 한살 나이를 먹게 될 텐데 계절이 이렇게 무르익도록 무엇을 했던가 하는 자책으로 하루하루가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서른아홉 가을엔 그를 닮은 넉넉하고 풍성한 마음으로 나를 울렸던 사랑도, 우정도 모두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겸허한 모습을 보이고 싶습니다. 스산해진 날씨 따라 물들어 버린 내 일상을 감동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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