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8월 8일 버마에서 민주화시위가 벌어졌다. 이를 '8888운동'이라 불리는데, 26년간 독재를 해온 '네윈'장군의 미친 화폐정책이 화근이었다. 그는 45차트와 90차트짜리 지폐만 남기고 모두 폐지시켰다. 다른 종류의 지폐를 가진 국민들은 하루아침에 무일푼 신세가 됐다. 네윈 장군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짓을 한 것은 '9로 나눌 수 있는 숫자만 행운의 숫자'란 미신때문이었다.

당시 시위대 3000여명이 유혈진압으로 사망했고, 네윈 장군은 물러났지만, '탄쉐'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다시 군부독재는 이어졌고, 1990년 '아웅산 수치'여사가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탄쉐의 군사평의회는 선거 자체를 무효화시키고 아웅산 수치 여사를 연금, 16년간의 철권통치가 이어진다.

탄쉐(74)장군은 최근 석유값을 예고도 없이 5배나 올리고, 사원에 지원하던 유가 보조금을 철폐하면서, 시민과 학생들이 크게 반발했고, 승려들이 시위를 주도하면서 지금의 '미얀마 사태'가 벌어졌다. 사원들은 정부가 하지 못하는 사회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학교, 고아원, 양로원, 보육원, 병원 등을 무료로 운영하는데, 기름값이 폭등하니 절박해졌다.

탄쉐는 미신을 지나치게 신봉한다. 수도를 양곤에서 밀림속 네피도로 옮긴 것도 점성가의 말을 믿은 탓이고, 국명 '버마'를 '미얀마'로, 수도 '랑군'을 '양곤'으로 바꾼 것도 작명가의 말에 따른 것이라 한다.

그러나 야당과 민주화세력들은 군부 독재자가 바꾼 이름을 쓰지 않고 여전히 '버마'와 '랑군'을 사용한다. 탄쉐는 "오토바이를 탄 암살자에 죽을 수도 있다"는 점쟁이 말을 듣고 수년전부터 양곤지역에서 오토바이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

버마 서민들은 하루 벌이 1000원 가량으로 빈곤에 허덕이는데, 탄쉐는 딸 결혼식을 초호화판으로 치렀다. 딸과 사위에 준 선물이 5000만달러 어치나 되고, 결혼식때 딸은 온몸에 다이아몬드로 도배질을 했다. 이 결혼식 장면이 인터넷에 올려져 '국민적 분노'를 촉발시켰다.

지금 유혈사태는 강제진압됐고, 표면적으로는 진정국면이지만, '안으로 타들어가는 불'은 여전한 '휴화산'일 뿐이고, 국제적 압박도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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