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현(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모순이 가득한 조선사회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수기치인(修己治人)을 일생의 목표로 살았던 선비들 중에 뽑힌 조정대신들이 왜란을 겪게 하고도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더니 또 다시 속수무책으로 청의 침략을 당하게 했다. 관군은 숨어 움직이지 않았고, 명나라의 도움은 애당초 어려웠으며, 의병도 일어나지 않는데, 어쩌자고 끝까지 싸우자 고집하며 30만 대군에 갇혀 말 먹이로 백성들의 지붕을 헐고, 절간을 뜯어 임금의 방을 덥혀야 하는 지경에 명나라 황제에게 신년 망궐례를 올리는지. 이(利)보다 의(義)를 앞세우고 명분을 목숨보다 중히 여기던 유학자들의 자기모순을 보는 것 같아 참으로 민망하고 황당하였다.

합리성이 부족한 사회, 그 뿌리는 깊고, 유전되고 있음을 친구의 전화는 확인시켜주었다. 2-3 주 전 그는 아들의 혼인 날짜를 잡았다고 했는데, 사주단자 보내는 방법을 묻는 것이었다. 우리 옛 풍속에 두 집안에 혼인이 합의되면 신랑의 사주를 신부 집에 보내고 날을 받아 신랑 집에 통보했다. 친구는 이미 혼인날을 받았는데 무슨 사주 보낼 걱정일까? 지금은 식구마다 전화기가 있고 드레스와 양복을 입고 예식장에서 식을 올리는 세상인데, 괜한 걱정 같이 보였다. 친구는 지식인이면서 양반 의식이 강해 체면 문제로 사주를 보내는 의미를 성찰하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혼례 이야기가 나왔으니 예식장에서 장삿속으로 만든 이벤트 몇 가지를 짚어본다. 청첩장의 문맥이 혼주가 아닌 아들 딸들이 초대하는 양 된 것을 보내는 세상이지만……

촛불켜는 것은 본 행사가 아닌 식장을 꾸미는 일이므로 모친들이 새 사람들을 위해 만든 길(카펫)에 발자국을 내며 행진하는 것은 가당찮아 보인다. 신랑 신부가 웨딩카를 타는 경우 주례석 앞까지 나란히 입장하는 것이 옳고, 내빈들에게 인사드리는 순서에 부모에게 큰 절 하는 것은 폐백이 있으므로 손님들의 귀한 시간만 허비하는 짓이다. 꼭 필요한 행사 아닌 일로 1분 1초라도 낭비하는 것은 예에 벗어나는 일이다.

어떤 일이든지 본래의 의미를 생각하고 하면 이처럼 시간이나 재물을 낭비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합리적인 정신이다. 그런 정신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공직자들에게 그렇지 못한 경우를 종종 본다. 포항시의 남·북구를 합치는 문제도 진지하게 생각해 봄직하다. 그로 인해 잃는 것은 공무원의 자리요, 얻는 것은 예산절감으로 시민의 복지예산이 늘어나는 것이라 생각한다. 도청 이전 문제로 도의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는 소식인데, 우리나라 행정체계를 대폭 바꾸어야 한다는 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들의 철밥통 걱정과 표를 의식하는 정치인들의 용기 부족으로 진척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전을 위해 투자된 막대한 비용은 어떻게 하나? 도민 전체의 복지증진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결정하리라 믿는다. 성찰하는 삶, 합리적 정신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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