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각종 회정 통리원장

"인간의 근본 욕망은 '행복 추구'입니다. 행복이란 물질 보다는 정신적, 내면적 행복이 더 중요합니다. 훌륭한 집이 아닌 오두막 집에 살더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끝임없이 자기 수련(정진)을 해야 합니다"

대한 불교 진각종(眞覺宗) 통리원장(統理院長)인 회정(悔淨·56) 정사의 고향은 지금도 오지로 소문난 포항시 북구 기계면 계전리다. 그의 속명은 김상균(金祥均).

진각종 통리원은 종단의 중앙집행기관이다. 통리원장은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같은 직위로 종단 운영의 실질적 책임자이다.

진각종은 남승(男僧)을 정사, 여승(女僧)을 전수라고 호칭한다. 모두 재가승(在家僧)으로 결혼과 함께 자녀를 두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진각종은 한국 불교 26개 종단중 하나지만 흔히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진각종을 4대 종단이라 부른다.

전 문교부장관과 위덕대 총장을 지냈던 손제석씨의 부친인 고(故) 회당 손규상(孫珪祥) 대종사가 1947년 경북 달성군 성서면 농림촌에 '참회원(懺悔院)'을 설립하고 종단을 세운 것이다.

위덕대학교(경주)와 심인 중·고등학교(대구), 진선여자 중·고등학교(서울) 등이 진각종 재단 소유 학교 재단이다.

회정 정사는 2005년 4월에 임기 4년의 제27대 통리원장에 취임했다. 그를 지난 20일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진각종 종단본부 통리원장실에서 만났다.

비서와 함께 2층 통리원장실로 가면서 법복(승복)을 입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진한 쑥색 양복, 깔끔하게 빗어올린 머릿결, 준수한 얼굴은 꼭 대학교수나 고위공직자 같아 보였다.

"법복은 언제 입느냐"고 묻자, "이·취임식 등 특별한 경우에만 입는다"고 설명했다. "진각종단은 '생활불교' '실천불교'를 지향한다"는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좀더 쉽게 이해가 됐다.

힘들었던 어린 시절

회당 통리원장은 6·25 전쟁이 일어났던 50년(호적은 51년생) 아버지의 고향인 포항시 북구 흥해읍 약성리에서 2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의 고향과 같은 마을이다. 그러나 어릴때 외가인 포항시 북구 기계면 계전리로 이사와 자랐다.

그런 탓에 약성리는 아버지의 고향 정도로 기억될 뿐이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이었던 그는 자라면서 늘 배가 고팠다.

산골길 8km 이상을 걸어 기계초등(40회)·기계중학교(12회)를 졸업했다.

그는 "워낙 산골이다보니 먹고 살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중학교까지는 집에서 근근히 다닐 수 있었지만 고등학교 진학은 꿈도 꾸지 못했죠. 당시 기계중학교 졸업생 100여명 중 포항, 경주 등 외지 고등학교로 진학한 인원은 손꼽을 정도였지요"라며 힘들었던 어린시절을 떠올렸다.

68년 중학교를 졸업한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부산으로 갔고, 주경야독으로 고교 검정고시 과정을 마쳤다.

하지만 그는 도저히 가난이란 굴레를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더 이상 정상적인 학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결론내린 것이 진각종단 입문이었다. 진각종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수장이 되기까지

진각종을 창종(創宗)한 회당 대종사는 울릉도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회당의 부친을 비롯한 그 선대의 고향은 기계면 계전리이다.

회당은 창종하기 전 선대의 고향인 계전리를 찾아 '밀교중흥(密敎重興)' '문맹퇴치' '생활불교' '현세정화(現世淨和)' 등을 주창하며 고향 사람들을 교화했다.

이때 회정 통리원장의 어머니 역시 독실한 신도였다. 이때문에 그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자연스레 진각 불교가 마음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던 것.

그는 일년만에 부산 생활을 청산하고 이듬해(69년) 상경, 진각종에 입문했다. 어릴때부터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은 탓에 낯설지가 않았다.

진각종에 입문한 그는 배고팠던 어린 시절을 가슴에 품고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인물이 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진각대학, 황경심인당, 진각종 교육원 전문과정 등에서 깊이 있고, 체계적인 공부를 했다. 아울러 종의회 의원, 통리원 국장·부장 등을 거치면서 종단 경영에도 깊이 관여했다.

드디어 지난 2005년 4월, 입문 38년만에 진각 종단의 사령관격인 통리원장 자리에 올랐다.

이날 취임식에는 불교계 인사 뿐 만 아니라 당시 열린우리당 문희상 당의장,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 이명박 서울시장,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 등 정·관계 인사들도 대거 참석, 통리원장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고향친구가 진짜 친구

"초등학교 1학년때로 기억됩니다. 이상윤(이원형 대구시의원 부친) 담임선생님이 키가 작았던 저를 앞으로 불러내 '비록 상균이는 키는 작지만 공부는 제일 잘하니 본 받아야한다'고 칭찬해 준 말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제 자존심을 세워준 것으로 칭찬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 준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포항사람 특유의 '의리'를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왜냐하면 초등학교 2학년때 담임 선생을 지금도 가끔씩 모시며 식사를 하고 있다는 것.

"초등학교 2학년때로 사라호태풍이 있었던 59년으로 기억합니다. 등교하다 말고 상급생과 함께 인근 기북초등학교 운동회에 놀러갔지요. 다음날 담임 선생님에게 '몸이 아파 등교하지 못했다'고 거짓말한 것이 탄로나 책상위에 올라가 종아리를 엄청나게 맞았지요. 요즘도 만나면 농담삼아 그때 이야기를 합니다"

현재 그는 재경 포항향우회나 재경 기계 초·중학교 동창회 등의 모임에는 빠지지 않고 나간다. 한마디로 고향사람들이 좋아서다. 현재 기계초등 동기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동기를 만나면 제가 먼저 분위기를 잡아 그때 그시절로 돌아간다"며 "올해 여름 포항 귀빈예식장에서 있은 동기회에는 300여명 졸업생 중 80명 정도가 참석했다"고 자랑을 늘어놨다.

아동복지에 관심많아

그는 지난해 위덕대 옆에 노인수용시설인 '위덕 어르신마을'을 개원했다. 올해는 서울에서 '미혼모 보호시설'을 열기도 했다.

그는 원래 사회복지쪽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을 만날 때마다 3~4명은 낳아야 된다고 설득하고 있다"며 "언제 고향발전을 위해 일할 기회가 있다면 어린이복지시설 등에 관심을 가져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을지문덕과 최영 장군을 좋아하며, 최근 인물로는 '통솔력'과 '결단력' 때문에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했다.

부인(진각종 전수)과의 사이에 아들 둘을 두고 있다.

끝으로 그는 "지금 정치권은 대선을 앞두고 보수·진보, 중도, 좌파, 우파 등으로 나뉘어져 서로 헐뜯고 있다"며 "이제는 이념보다는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정치가 중요한 만큼 그것을 위해 종교계도 그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며 나름대로 정치적 소신을 밝혔다.

회정 진각종 통리원장 이력

▷포항시 북구 흥해읍 약성리 태생(1951년생)

▷기계초등·기계중학교 졸업(1968년)

▷대한불교 진각종 진각대학 졸업(1990년)

▷진각종 총무부 총무·문화사회국장 및 총무부장 역임

▷진각종 8대·9대·11대 종의회 의원 엮임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수료(1997년)

▷종립 진선여자 중·고교 전담 임원(1999년)

▷학교법인 회당학원 이사(2003년~현)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부회장(2005년~현)

▷사회복지법인 진각 복지재단 대표이사(2005년~현)

▷진각종 통리원장(2005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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