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증 남편 결국 뇌출혈로 쓰러져 거동불편
노인정 단칸방서 세식구 월 60만원으로 근근이 생활

"10여년전 사업실패로 남편은 술을 많이 마시면서 결국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됐습니다. 사지를 다 묶어도 발버둥 치던 남편은 지난해 뇌출혈로 인해 거의 움직이지 못해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괴롭습니다"

한영옥(여·45·안동시 강남동)씨는 4일 새벽 안동시 강남동 노인정에 있는 조그만 방에서 구부린 채 누워있는 남편 최모(53)씨와 딸 수연(13)에게 이불을 겹으로 덮어주면서 이 같이 하소연을 한 뒤 눈물을 훔쳤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된 한씨는 한달간 남의 집에 날품을 팔아 얻은 수입 60여만원으로 힘들게 생활하고 있다.

그나마 일이 없는 날이 많아 수입이 크게 줄어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한씨 가족이 현재 살고 있는 곳은 강남동 경로당 내에 있는 단칸 방. 한씨의 닥한 사정을 전해들은 강남동 노인정을 이용하는 노인들의 배려로 마련됐다.

한씨는 "노인분들에게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폐는 끼치지 않아야 하는데 오갈 곳 없는 우리 가족에게 노인들께서 방을 마련해 줘 너무 고마웠다"며 노인정 어르신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한씨 가족에게 불행이 찾아든 것은 10년전인 지난 1997년. 남편이 안동에서 벌인 국밥집 등 하는 사업이 모두 실패로 끝이 나면서 시작됐다.

실망한 남편 최씨는 그때부터 술을 많이 먹기 시작했고, 결국 몇년전부터 알코올 의존증 환자가 됐다.

지난해에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최씨는 거의 움직 못하는 상태로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몸을 구부린 채 몇 년 동안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 영옥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처지에 놓였다.

그나마 시의 도움으로 긴급가정지원 서비스를 받아 간신히 입·퇴원을 반복하고 있지만 남편 치료비로 들어간 빚이 2천만원이 훌쩍 넘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딸 교육비도 남의 집 청소 일을 하면서 받는 적은 돈으로 감당하기 너무 힘들다. 사춘기인 딸에게 용돈 한번 못 줘보고 그 흔한 학원도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한씨는 "얼마전 딸 아이가 생일을 맞았는데 딸아이가 눈치가 빠른 탓인지 생일이라는 말을 입 밖에도 내지 않은 채 매일 먹는 식은 밥에 물을 말아 먹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며 멍하니 방 천정만 바라봤다.

고달픈 삶은 한씨의 건강 마저 그대로 앗아갔다. 허리와 무릎은 언제부터인가 굽혔다 펴기도 어렵고 하루에도 몇 번씩 두통이 찾아와 어지럼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남편 옆에서 같이 쉴 수도 없고 병원은 고사하고 약국에 갈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에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한씨는 매일 새벽녘이면 늘 아픈 허리를 움켜지고 날품팔이에 나서야 한다.

적은 돈이지만 한푼 이라도 벌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씨는 "매일 새별 일을 나갈 때 마다 한줄기 햇빛도 들지 않는 방에 혼자 누워있을 남편을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고 울먹였다.

남편 최씨의 병세는 날로 악화되면서 한씨의 걱정도 늘어만 가고 있다.

간경화까지 겹쳐 당장 치료와 간호가 뒤따르지 않으면 생명부지가 어려운 실정이다.

한씨는 남편 걱정도 걱정이지만 딸과 함게 앞으로 하루 하루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더 걱정이다.

"청소 일이 들어와야 하루 한 끼라도 떼 울 수 있을 텐데…."라며 한씨는 끝내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한씨는 "지난세월이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하면서 한씨는 아픈 허리를 만지작거리면서 기침을 계속했다.

한씨는 아픈 몸과 속마음을 감추려는 듯 "요즘 새벽은 안개가 유난히도 짙은 것 같다"며 "내일 새벽 청소 일은 나갈 수 있을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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