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첫 은메달·국내 최연소 9단 승단·용인대 총장 4연임 신기록…

김정행 용인대학교 총장

1965년 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브라질 세계유도선수권대회 파견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렸다. 당시 국내 유도는 재일동포 선수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유도 종주국 일본에서 배운 그들에게 국내파는 판판이 넘어갔다. 헤비급 결승전. 매트 한쪽에 체중 130kg의 거구이자 재일동포 간판스타인 신웅건이 우뚝 서 있었다.

맞은편 상대는 국내파로 키 172cm의 보통키에 체중 90kg밖에 나가지 않는 다소 왜소한 체격의 김정행이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과 같았다. 그때까지 신웅건을 꺾어 본 국내파가 없었다. 이 시합을 지켜보던 관중은 하나같이 신웅건이 과연 몇분 만에 김정행을 한판승으로 이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

시작과 함께 신웅건이 김정행에게 기술을 걸기위해 맹렬히 달려 들었다. 하지만 신웅건을 몇번 견제하던 김정행이 얍! 하는 기합과 함께 상대의 팔을 당겼다. 전광석화과 같은 '빗당겨치기'였다. 거구인 신웅건이 맥없이 매트에 떨어졌다. 대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이 시합으로 김정행은 유도계의 차세대 유망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한국 유도계의 샛별로 본격 떠오른 것은 대학 졸업 2년후인 1967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국내 처음으로 은메달을 땄다. 지금이야 은메달 획득은 신문 스포츠면에 일단 기사감 밖에 안되지만 그때만해도 국내 각 신문들은 그의 쾌거를 대서특필했다.

포항출신인 그는 지금 한국 유도계의 대부이자 국내 체육계의 거두로 한국의 체육발전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국내 유도사에서 최연소로 9단에 승단한 인물일 뿐 아니라 국내 사학 대학의 총장 중 4연임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숙명여대 이경숙 총장도 4연임)

김정행(64) 대한유도회 회장이자 용인대 총장을 지난 11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삼기동 용인대학교 총장실에서 만났다. 총장실 내부는 생각보다 좁고, 각종 집기도 소박했다.

떡 벌어진 어깨와 단단한 체격, 짧은 스포츠 머리는 한 눈에 무도인임을 알 수 있었다. 운동을 많이 한 때문이지 이마에 주름살이 없어 10년은 젊게 보였다.

포항에서 올라왔다고 하자 김 총장은 '과메기'와 '물회' 이야기부터 꺼냈다.

"요즘 포항 과메기가 제철을 맞았는데, 포항 과메기는 겨울철 술 안주 뿐 만 아니라 겨울철 별미로 서울은 물론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요즘 횟집에 갈 때 마다 과메기가 나오지 않은 식당에서는 일부러 과메기를 주문하지요. 박승호 포항시장이 과메기와 함께 '포항물회'를 전국에 알리기위해 무척 애쓰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포항물회는 사계절로 즐길 수 있는 식품(음식)인 만큼 오히려 과메기보다 더 인기를 끌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기자가 "박승호 포항시장이 용인대 출신이라 포항사람들에게 용인대를 알리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유도학과 76학번인 박 시장을 고향 후배 중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저 역시 박시장과 마찬가지로 어릴때 단순히 유도에 매료돼 유도를 시작하게 된 것"이라며 "최근 용인대를 빛낸 인물로 선정해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대답했다.

중3때 유도에 '매료'…동지고서 대구 대건고로 전학

김 총장 부친의 고향은 포항시 북구 청하면 월포리(月浦里)다. 하지만 그는 포항시 북구 동빈동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의 호 '월포(月浦)'는 고향 마을 이름을 따 지었다.

'달빛이 비치고 있는 포구'인 고향을 너무 좋아해 호로 삼았다는 것. 6남매의 장남이자 외아들인 그는 부친이 운수업과 어업을 한 관계로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

선천적으로 힘이 좋고, 행동이 민첩했던 그는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유도를 시작한 것은 포항중학교 3학년때였다.

초대 포항시장을 지냈던 고(故) 문달식씨(문충배 사랑병원장 부친)가 개설해 운영하던 유도체육관에 나가면서부터.

그는 선·후배간의 예의범절이 깍듯했던 유도에 흠뻑 빠져 들었다. 특히 당시 유도6단의 문 관장을 존경하며 "나도 커서 저렇게 훌륭한 유도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후 그는 포항동지상고에 입학했다. 현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1년 후배로 이 후보와는 각별한 사이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유도에의 꿈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그는 그 당시 유도 명문 고교인 대구 대건고로 전학 했다. 집안 반대가 심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초지일관의 삶'… 피나는 노력의 '대가'

유명 선수들에 비해 늦게 유도를 시작한 그는 고등학교 및 대학 입학때는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심지어 유도대(현 용인대의 전신)에 입학할 때는 성적과 실기가 꼴찌 수준이었다. 초단을 대학 1학년에 땄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대학재학 중 피나는 연습과 노력을 통해 동료 선수들을 앞서 나갔다. 한마디로 뚝심의 사나이 그 자체였다.

"65kg의 빈약한 체구에 팔까지 짧은 제가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피나는 훈련밖에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어요. 팔 힘을 키우기 위해 벤치프레스와 고무줄 당기기, 그리고 산악훈련에 매달렸지요. 금속 바벨이 없어 돌로 만든 역기로 동료들이 10개를 들면 저는 40~50개를 들었어요. 군 근무때는 보초 서면서 M1소총으로 팔운동을 했어요. 무게 4.37kg의 소총을 1시간 내내 당겼다 폈다 하고 나면 내 팔이 아닌 듯한 느낌이었지요."

결국 그는 유도대학 입학때는 꼴찌였지만 65년 졸업때는 수석으로 졸업했다. 졸업후 동기생 신석기(현 미국 오마하대 교수)와 둘이 교수요원이 되기 위해 학교(조교)에 남았다. 그후 71년까지 3차례 세계선수권 대회에 국가 대표로 출전했다. 조교로 시작해 전임강사(70년)→조교수(76년)→부교수(81년)→정교수(86년)→유도학과장(87년)→부총장(92년)→총장(94년)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용인대의 산증인이요, 그의 좌우명 '초지일관'대로 걸어온 삶이었다. 유도와 함께 학문에도 매진, 스포츠 의학으로 일본에서 이학박사학위까지 받았다.

67년 동경유니버시아드대회 "내생에 최고의 기쁨"

'살아오면서 가장 기뻤던 일'을 물었다.

"67년 동경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은메달을 걸고 시상대에 오를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 미국(67년), 멕시코(69년), 독일(7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 3회 연속 국가대표로 출전한 것 또한 한번도 출전하기 힘든 때라 저에겐 결코 잊지 못할 영광이었습니다."

용인대는 지난해 카타르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유도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 선수의 모교이다. 1953년 유도지도자 야성을 목적으로 서울 중구 명동에 설립한 대한유도학교가 그 뿌리. 56년 학교재단이 대한유도회에서 대명학원으로 바뀌었으며, 85년 캠퍼스를 용인으로 이전했다.

90년 교명을 유도대학에서 대한체육과학대학으로 변경했다. 종합대학 승격(92년)과 함께 용인대학교(93년)로 또다시 교명을 변경했다.

현재 용인대는 국내 유도인구의 80%를 배출하고 있으며, 총 6개 단과대에 주·야간 39개 학과가 있다.

김총장은 10여년전에 유도, 태권도, 검도 등 모두 무술을 종합한 '용무도(龍武道)'를 창시한 인물로 유명하다.

향우회 회장직 여럿 맡을 정도로 고향 사랑 남달라

그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모친이 아직도 포항 동빈동에 살고 있는 관계로 여느 출향인사보다 자주 포항을 찾는다.(부친은 올해 작고)

그는 포항동지고에 유도를 보급했다. 그는 "현재 동지고의 유도실력은 대구 계성고보다 한 수 위로 경북도 최고 실력"이라고 평가했다. 국가대표로 용인대에 재학중인 김수경(81kg)과 김재범(73kg)이 동지고 출신이라는 것.

평소 리더십이 강한 그는 현재 국내외 스포츠단체 뿐 만 아니라 각종 향우회 회장직도 여럿 맡고 있다. 재경 중앙초등 동창회창, 포항출신재경 인사들의 모임인 '영포 향우회' 회장 등 향우회 일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거짓말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는 그에게 은퇴 후 계획을 물었다. 그는 "고향에서 고향 친구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름 '정행(正幸-바르게 살면 반드시 행복이 찾아 온다)'대로 살아 가는 전형적인 영일만 사나이였다.

金正幸 총장 약력

▷1943년 포항시 북구 동빈동 출생

▷포항중앙초, 포항중학교, 대구 대건고(61년) 졸업

▷용인대 전신인 대한유도대학(65년) 및 동 대학원 졸업

▷용인대 전임강사, 조교수, 교수, 학생처장, 부총장 등 엮임

▷용인대 2대 총장 취임(94년), 현재까지 4연임

▷대한 유도협회 회장(현)

▷대한체육회 수석 부회장(현)

▷동아시아유도연맹 회장(현)

▷범태평양유도연맹 회장(현)

▷세계유도연맹 부회장(현)

▷한국 약속지키기운동본부 총재(현)

▷부인 조명자씨와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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