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주민들의 따뜻하고 순수한 '환대'

김유복의 안나푸르나 원정기Ⅲ

산 속에서의 첫 숙소 '사울리 바자르'에 도착

 

'마차푸차레봉(Machhapuchha re, 6천993m)'은 네팔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산으로, 생긴 모양이 마치 물고기 꼬리 같아 서양인들이 '피시테일(Fish Tail)봉' 이라고도 부른다.

 

지금까지 인간이 딱 한번(1967년) 발을 디뎌보고는 지금까지 등반 허가를 해주지 않고 있는 유일한 산이기도 하다.

 

포카라에서 보면 마차푸차레는 단연 독보적인 산이다.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아 주위의 연봉들을 압도하고 있다.

아침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물든 마차푸차레봉의 아름다움.

 

늘어진 몸을 추스려 비레탄티를 나선다. 길이 제법 넓은 편이고 길 옆으로 벼농사를 지어 추수를 하는 농부들의 바쁜 모습이 우리네 농촌과 많이 닮았다. 평화로운 농촌모습은 어느곳에서도 풍요롭다. 그래서 안나푸르나를 '풍요의 여신'이라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지나는 길목에 붉은 깃발을 꽂아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받는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도 마오이스트(모택동주의 공산당원)들이 지나는 사람마다 통행세를 강탈(?)하는 것이다.

사울리바자르 주민들과 함께한 백우흠 부회장이 흥겨운 북을 치고있다.

 

지난해 쿰부히말에서도 목격했는데, 이 나라의 치안부재로 정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준다.

 

인당 500루피(네팔 화폐단위, 1달러 60루피)씩 받아낸다. '파상'이 우리 일행들의 숫자만큼 돈을 지불하는 모양이다.

 

30여분 올라온 산길 옆에 시원한 물줄기가 마오이스트의 붉은 야욕을 잊게 해준다.

 

55m 높이의 강가 폭포가 이방인의 마음을 새롭게 씻어 주려고 애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첫 롯지 숙박을 기념하며 마당에서 벌어진 포항 과메기 파티에서 일행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비교적 평탄한 길을 2시간정도 걸어올라 당도한 곳이 첫 숙박지인 '사울리 바자르(Syauli Bazar, 1천170m)' 라는 곳이다.

 

첫날부터 무리한 운행은 피해야 한다는 이인대장의 설명이 있었다. '리버사이드 게스트하우스(Riverside G uest House)'에 여장을 풀고 강가에 씻으러 내려갔다. 물이 차가워 얼음물 같은데도 용감한(?) 손동학 부회장은 강물에 몸을 담근다. 얼굴과 머리만 감고도 얼얼한데 대단한 용기다.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첫 롯지 숙박을 기념하며 포항 과메기와 소주를 곁들여 한 순배를 돌리기로 했다.

사울리바자르 주민들로 부터 환영의 레이를 받고있는 이경수박사님(오른쪽 첫번째)과 필자.

 

과메기와 김, 초고추장, 마늘 등이 나오니 다들 군침을 삼킨다. 롯지 마당에서 펼쳐진 과메기 파티에 저녁 먹을 생각도 없이 몇 순배가 돌아간다.

 

김용운 명예회장과 이경수박사의 건배 제의가 있고 얼굴이 익지 않은 일행들이 서로를 알기 위해 술잔을 권한다. 네팔에서 포항과메기와 소주를 먹는 멋은 트레킹이 아니면 가질 수 없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여기까지 온 두번째 이유를 든다면 산속에서 즐기는 먹을거리가 아닐까.

 

유쾌하고 즐거운 저녁 만찬이 끝나고 이곳 사울리바자르 동네 주민들이 한국에서 온 경북산악연맹 트레킹단을 환영하는 민속공연을 준비했단다. 마을 어른, 아이 모두 나와 춤과 노래로 흥을 돋운다.

들녁에서 추수하는 현지인들의 모습

 

네팔이 원래 흥이 많은 민족이라 신명을 내는데는 남녀노소가 없다. 스태프로 따라온 포터들과 쿡, 키친보이, 가이드 셀파도 함께 나와 춤추고 노래한다.

 

우리 일행들도 덩달아 춤을 춘다. 세계가 하나 되는 순간이다. 나라와 이념과 종교가 달라도 신명나는 놀이는 차이가 없다.

 

춤사위가 절로 나온다. 어린애들도 춤을 곧잘 춘다.

 

아름다운 마음과 찾아온 손님에 대한 마을 인심이 절로 우러나온다.

 

마을 주민들의 공연이 끝나고 우리 단원들이 답례 차원에서 합창도 하고 춤을 추어 보인다.

 

숨은 실력을 보이기 위해 강치호(포스코산악회)씨의 하모니카 독주가 시작되자 마을 주민들의 귀가 쫑긋해진다. 또 한 번의 어울림이 되풀이되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모금이 한차례 돌아간다.

 

주민들이 손수 만든 꽃 레이를 우리 일행들 목에다 일일이 걸어 주며 '라마스떼'를 연발한다.

 

'라마스떼' 네팔말로 '신의 기호가 있기를' 이라는 인사말로 만날 때마다 주고받는 말이지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간절함도 있다.

 

가장 열심히 춤을 춘 어린이들에게 단장 선물로 100루피씩 건네주고 일행들에게 모금한 돈을 마을 발전기금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사우리바자르 에서의 즐거운 밤을 끝 맺었다. 쏟아지는 별빛을 헤아리며 산 속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11월 16일, 5시에 일어나 히말라야의 새벽을 맞는다. 새벽 공기는 차고 맑아 동이 트지 않은 새벽하늘에는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도 밝아 보인다.

 

북두칠성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오늘은 뉴브릿지를 거쳐 촘롱까지 가야 한다. 고도를 1천m나 올리는 다소 힘든 하루가 될 것 같다.

 

어젯밤 기분 좋아 마신 술이 과했을 수도 있는데 다들 아무일 없는 듯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떤다.

 

산행 시작 전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고마운 사울리 바자르를 떠났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 양쪽으로 계단식 농토가 높은 고지대까지 이어져 있다.

 

 

히말라야 東과 西 현격한 문화차이에 '당혹'

 

히말라야 산중에서도 이렇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 몇 안되는데 이곳 안나푸르나 지역은 고도가 그리 높지 않고 물이 풍부해서 농사짓는 여건이 열악하지 않아 마을마다 농사일이 많아 보인다.

 

동쪽 히말라야와 서쪽이 다른 점이 농사뿐만이 아니다. 쿰부히말(동쪽 히말라야 지역)에서는 척박한 땅에 고도가 높은 지역들이라 논농사는 생각지도 못하지만 여기 서쪽 지역은 그렇지가 않다.

 

또한 종교적인 면에서도 판이하다.

 

쿰부쪽은 마을마다 어귀에 들어서면 티베트 불교의 경전을 새긴 바위나 불탑, 룽다(붉고, 희고, 노란 천에다 경전을 적어 높게 여러 가닥으로 걸어놓은 것)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고 마니차 (불교 경전을 새겨 돌리는 원통형 기구, 마을 어귀나 나가는 길목에 설치되어 있다)가 이방인의 눈길을 끄는데 이곳 서쪽 안나푸르나 산군의 마을에는 그런 문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쿰부쪽에는 티베트 영향을 받아 사는 고산족이 거의 티베트 불교를 숭배하지만 서쪽 지역에서는 힌두교와 불교가 혼재해 있어 그렇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네팔 민족의 다양성에 비추어볼 때, 동쪽 히말라야 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다소 여유가 있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서쪽 지역 사람들이 덜 순수해 보인다.

 

길가에서 만난 아이들이 '라마스떼, 라마스떼' 하면서 손을 내미는 모습을 보고는 실망스러웠다. 지난해 쿰부쪽 아이들은 수줍어하고 무엇을 줘도 잘 받지않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만 굴리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미 이곳에서도 문화의 차이가 많이 나고 있음이다. 외국인들이 비교적 안나푸르나 쪽에 많이오니까 그 영향으로 순수성을 잃어가는 것 같아 보기가 좋지 않다.

 

사울리 바자르를 떠나 2시간 30분만에 '큐미(kyuMi)' 마을에 도착했다. 롯지가 두어 곳 있고 꽃 단장을 잘한 깨끗한 곳이다.

 

집을 가꾸고 정원을 꾸미는 일도 심성에 따라 다른가 보다. 이곳 롯지의 주인들이 꽃을 좋아하고 그나마 산중이라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는 마음씨가 손님을 맞을 채비를 잘하고 있는 것 같다.

 

히말라야는 사계절을 죄다 갖고있는 곳이다. 고도가 낮고 볕이 잘 드는 데에는 봄과 여름이 함께 하고 농부들의 추수하는 모습은 바로 가을이 거기 있고, 파란 하늘 아래 만년설로 뒤덮은 높은 산들의 혹독한 겨울이 보인다.

 

높은 바위 벽에 석청이 몇군데 붙어있다.

 

몸에 좋다는 것에는 사족을 못쓰는 사람들이 한때 히말라야 석청에 목숨을 건 때도 있었지만 수직벽에 붙은 석청은 그림의 떡이다.

 

현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 사람들이 하도 석청 좋다고 사가는 바람에 요즈음은 가짜석청이 많다고 하니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산이 좋아 산을 다니는 사람이 산만한 보약이 어디 있을까.

 

이 아름다운 히말라야에서 웬 석청타령일까.

 

히말라야! 이 청정세계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요, 상그릴라(이상향)가 아닌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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