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복의 안나푸르나 원정기 Ⅳ

안나푸르나 품속으로 한발 다가가며 느낀 상념이 필자가 살아온 역정을 뒤 돌아 보게도 하고 산을 다니는 이유도 되씹어 볼 수 있어 좋다.

 

푸른 하늘, 맑은 물, 높은 산, 울창한 숲, 마셔도 마셔도 싫지 않는 산 공기가 너무나 좋다.

 

그리고 온 세상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이곳 안나푸르나에서 만나는 사람도 즐겁다.

 

대부분 서양쪽 사람들이 많다. 만나는 사람마다 웃으며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하이!', '라마스떼!'. 젊은이나 늙은이나 상관이 없다. 남자, 여자 구분없이 그냥 좋은 것이다. 히말라야에서 만났다는 게 서로의 행운이고 좋은 만남 이라는 것 밖에는 없다.

안나푸르나사우스와 히운출리봉의 만년설을 배경으로 전대원이 포즈를 취하고있다.

 

쿰부쪽 보다 훨씬 많은 외국인을 만났다. 동양인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데 간혹 한국의 젊은이들이 힘겹게 오르락내리락 한다. 보기가 정말 좋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티가 나는가 보다. 딱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우리네 젊은이들이 세계 어디를 가도 당당하게 활보 할 수 있는 국력정도가 된 것이다.

 

안나푸르나사우스와 히운출리봉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힘겨운 급경사 길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히말라야 산중에서는 햇볕만 나면 뜨거운 태양열에 오름짓이 여간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40여분을 헉헉대고 오른다.

 

김용운 명예회장께서 근육통으로 고통스러워 하지만 그래도 처지지 않고 잘 견뎌 내신다.

 

내리막이 다시 시작되고, 산행은 고행의 연속이다. 11시가 넘어서 뉴브릿지에 도착했다. 시원한 물로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발도 씻었다. 한결 나아진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간다니 반갑다.

 

촘롱으로 오르는 돌계단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여인과 환상의 화원길.

롯지 앞 벤치에는 외국 젊은이들이 햇살을 맞으며 차를 마시고 있다.

 

어디서 왔는지 말을 걸어 본다. 둘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고 한사람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왔단다.

 

구레나룻이 아주 탐스럽고 멋져 보여 함께 사진도 찍으며 담소를 나눠본다. 이제 'KOREA'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임을 여기서도 확인이 된다.

지누단디 롯지에 걸린 한국인 환영 안내판

 

점심은 '알루(감자)' 수제비국이다. 감자는 이 나라의 주식에 가까운 소중한 작물이다.

 

어디를 가도 감자 요리가 많이 나온다.

 

감자를 썰어 넣은 수제비가 감칠맛이 난다.

 

벤치에 앉아 한낮의 느긋함을 안나푸르나 사우스봉(7천219m), 히운출리봉(6천441m)과 함께 한다.

 

현지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망울이 아름답다.

하얀 눈이 시리도록 박힌 봉우리와 짙은 녹색의 숲과 우렁차게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 그리고 피부 빛깔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한데 어우러져 히말라야의 산중 하모니가 연출된다.

 

식후의 산행이 어렵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이고 또다시 산속을 헤집고 들어간다.

 

점차 고도를 높이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는다.

 

계곡을 건너 한참의 오르막을 올라 숨을 몰아쉬고 건너편 먼 산을 쳐다보며 잠깐의 휴식으로 새로운 기운을 만들기를 반복하며 걷는다.

 

이번 트레킹 산행은 업 다운(up down)이 많아 힘이 많이 드는 산행이다. 고소증세는 아직 없지만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으로 체력적으로 소모가 많은 워킹이다.

 

계단식 논밭이 산꼭대기까지 이어져 있고 그 위에 집들이 그림 같이 서 있다.

 

평화롭기는 하나 지친 사람에게는 그리 평화롭지가 못한 것 같다. 뉴브릿지를 출발해 1시간 30분 만에 '지누단디(JHINUTANTI·1천780m)'에 도착했다.

 

조그마한 마을이 꽃으로 장식 된 것 같이 꽃밭을 잘 가꾸어 놓았다.

 

'환상의 화원'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

 

여기서 오늘의 숙박지인 촘롱 까지는 가히 60도 경사의 죽음의 돌계단이 버티고 있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마을이 있다. 쳐다보면 금방 오를 것 같지만 이정표에는 1시간 30분이 걸린단다. 고도차이만 400m이니 급경사가 아닐 수 없다.

 

'환상의 화원' 지누단디를 벗어나면서 시작 하는 돌계단 초입에서, 내려오는 젊은 남녀 서양인에게 인사를 한다. '하이!' '라마스떼' 환한 웃음으로 맞아 준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고 물으니 오스트리아 사람이란다. '코리아'라고 하니 '코리아 넘버원'이라며 치켜세워 준다.

 

힘겹게 오르는 돌계단이 가볍게 여겨진다.

 

한동안 숨어서 보이지 않던 마차푸차레봉의 정상부위가 뾰족하게 꼬리를 내민다.

 

돌계단이 정말 쉬운 코스가 아니다. 깎아지른 경사의 돌계단이라 죽을 맛이다. 일행들이 고통스러워한다.

 

어렵게 올라 촘롱 마을 입구에 닿았다. 여기가 끝인가 했지만 더 가야 한다니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촘롱 입구 롯지에서 만난 한국 젊은 여성이 더욱 우리를 자극 한다. 인도에서 공부를 하다 3개월여를 티베트와 히말라야를 돌아보고 있단다.

 

까무잡잡해 현지인이라고 놀림을 받는다니 그럴 만 했다. 하지만 한국의 젊은이가 혼자서 이런 오지를 몇 달 동안 다닌다는 게 용하기도 하고 대단한 모험이라고 생각 되어 격려를 하고 싶었다.

 

수많은 돌계단을 밟고 올라온 일행들의 모습은 처절했다.

 

'촘롱(chomrong)' 해발 2천200m의 고지에 세워진 제법 큰 마을이다. 안나푸르나 사우스봉과 히운출리봉이 정면에 버티고 있고 비탈면에 롯지와 상점들이 세워져 있다. 농구대가 있는 운동장과 학교 건물도 보인다.

 

쿰부히말쪽에 있는 '남체바자르'를 연상케 할 만큼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심에 있는 지역이다. 국제 전화도 할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외국인들에게는 상당한 편의를 제공한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칼파나 게스트 하우스(KARPANA GUEST HOUSE)'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돌계단을 오르는 것은 트레커들 뿐만 아니라 포터들도 힘이 드는 모양이다.

 

포터들이 늦어져 젖은 옷을 갈아입지 못한 채 1시간여를 떨고 있었다.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다행이었다. 3천m 이상의 고도였다면 벌써 고소증세에 시달렸을 거다. 고소에서는 보온이 필수다.

 

그래서 머리도 감지 말라고 충고 하는 게 고소에서의 저체온증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오후 4시가 다된 시간이지만 히말라야 산중에서는 햇살만 없으면 추워진다.

 

근육통으로 고생하시던 김용운 명예회장께서 어렵게 올라 오셨다.

 

돌계단 오르느라 무척 고생하신 모양이다. 선두와의 차이가 1시간 이상 났다.

 

32명이라는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고, 거기에다 스태프들이 따라 붙기 때문에 웬만한 롯지 에서는 수용도 안 될 정도의 인원이라 사전 예약이나 롯지 확보가 그리 쉽지 않다.

 

포터들의 짐 수송이 늦어지니 식사도 늦어진다. 먹을거리며 취사도구등도 함께 운반하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

 

롯지의 다이닝에 먼저 온 대원들이 모여 앉아 그간의 피로를 풀기위해 소주와 과메기로 판을 벌인다.

 

밖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사우스봉과 히운출리봉의 만년설이 바람에 날려 장관을 연출하는 광경을 쳐다보니 안나의 품속에 들어 왔음을 실감한다.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에다 김치국, 가자미 구이가 나오는 한정식 요리다.

 

포항 연일에서 유명한 복집을 운영하는 이외숙 사장(경북연맹 이사)이 보내준 울릉도 명이나물과 무장아찌가 입맛을 돋운다.

 

지난해 트레킹 때도 지원을 해준 이사장께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다.

 

숭늉에 길들여진 대원들이 너도나도 숭늉을 찾는다. 심부름 하는 키친보이의 말이 걸작이다.

 

'숭늉 뽀글뽀글' 이라며 손을 내젓는다. 아직 덜 끓였다는 얘기다. 성화에 못 이겨 나온 숭늉 맛이 영 아니다. 대원들이 맞받아친다.

 

'누룽지 팍팍', 누룽지를 많이 넣으라는 주문이다. 재미난 식사시간 이었다.

 

윈드호스(Wind Horse)의 안 까르마 사장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말을 이제 제법 구사한다.

 

인도에서 대학을 나오고 불가리아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인텔리이며 에베레스트도 등정한 산악인 출신이다. 우리말을 배우려고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이 존경스럽다.

 

A.B.C 까지 같이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 문화에 대해 많은걸 알려고 한다. '58년 개띠'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줬다. (안 까르마가 58년생임) 한국에서는 우정을 돈독히 하기위해서 나이든 사람을 '형님'이라 하고 아랫사람을 '아우'라 한다고 하니 필자에게 바로 '형님'이란다.

 

웃고 지내는 사이 촘롱의 밤은 깊어지고 안나푸르나 사우스봉과 히운출리봉, 마차푸차레봉의 하얀 얼굴들이 어둠에도 빛을 발하여 쏟아지는 별무리와 어우러져 안나의 품속은 따스하게만 느껴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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