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배인…완벽을 추구하는 연주만이 청중에 감동줘"

박성완 포항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지난해 4월6일 밤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자리를 꽉 메운 청중들은 포항시립교향악단이 마지막 연주곡인 '베버 주제에 의한 교향적 변용'(힌데미트 작곡)을 마치자 그 어느 교향악단의 연주때보다 더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운동선수가 기대이상의 훌륭한 성적을 거뒀을 때 놀라움과 함께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는 그런 박수였다.

특히 이날 청중들은 반백의 머리칼을 뒤로 빗겨 넘긴 지휘자에 더욱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날 지휘자의 한 동작 한 동작은 수준있는 청중에게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며칠 뒤 국내의 한 유명 음악 전문지는 이날 연주평에 대해 첫 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이번 교향악 축제에서 포항시향의 지휘자 박성완의 열정은 대단했다. 그는 모든 곡을 암보(악보를 암기)해 관록이 묻어나는 지휘력을 과시했다. 일사불란하게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가는 힘과 음악의 내면을 예리하게 읽어 내는 눈이 그랬다.(중략) 이날 연주는 기대하지 않았던 포항시향의 존재감과 무게를 한꺼번에 던져 준 신선한 충격의 무대였다. 청중의 반응도 의외라는 듯 이 오케스트라에 던진 환호도 그런 뜻이 아닐까 한다."

이날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연주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비롯 전국의 21개 교향악단이 참가하는 국내 최고, 최대의 교향악 축제인 '2007 오케스트라 페스티벌'중 6번째였다.

2000년, 2006년에 이어 3번째 참가한 이날 연주회는 포항시립교향악단이 전국 수준의 교향악단으로 공식 인정받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사실 50여명의 단원 모두도 이날 연주에 대한 예상외의 반응에 한껏 고무됐다.

이처럼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연주가 일취월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단원들의 재능과 노력을 한 곳으로 응집, 훌륭하게 단련시킨 조련사의 역할이 가장 컸다. 그 '명(名) 조련사'가 바로 포항 출신인 박성완(58) 상임지휘자(부산대 음대교수)다.

'현재 포항 출신 최고의 지휘자'로 평가되고 있는 그를 지난 9일 포항시내 한 찻집에서 만났다. 요즘 방학을 맞아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단원들과 함께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전날 오후에는 포항문화원에서 포항지역 교사 100여명을 상대로 올해 첫번째 '찾아가는 음악회-아마데우스 이야기'를 열었다. 참석했던 포항시교육청 박정숙 학무국장은 "지휘자와 단원들이 하나가 돼 울려나오는 감미로운 선율에 푹 빠져 있는 교사들의 모습을 보고 가슴 뭉클했다"며 "교사들에게 이같은 기회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좋아했다.

지휘자의 해설을 곁들인 '찾아가는 음악회'는 이제 '문화도시, 포항'을 만드는 전령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휘자 박성완'에게는 우선 '학구적인 지휘자' '완벽의 지휘자'란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다른 지휘자와 달리 모든 연주회마다 스코어(지휘자용 악보)없이 지휘를 한다. 모든 곡을 암보하기 때문이다. 성실성과 인내심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단원들은 "끊임없이 노력(공부)하는 지휘자 모습에서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선비 지휘자'란 별칭도 빼놓을 수 없다. 외모에서도 풍기듯 그는 부드러운 남자다. 하지만 자기관리에 철저한 외유내강형(外柔內强型)이다. 선비의 지조(자신의 음악 철학)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평론가들은 그의 지휘 특징을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넘치는 지휘' '단원들과의 일체감이 단연 으뜸' '섬세하면서도 응축된 조화미' '혼신의 힘을 다하는 지휘자' 등으로 평한다.

한마디로 그는 철저한 준비(공부)를 통해 무대에 선 뒤 단원들과 함께 음악(연주)에 몰입한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음악가로 지금까지 걸어온 발자취를 뒤돌아 봤다.

-음악을 하게 된 동기는.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따뜻한 봄날 아침으로 기억됩니다. 세수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온 몸이 굳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곡이 끝나자 아나운서는 모자르트 작곡의 클라리넷 협주곡 제2악장 '백조의 노래'라고 멘트를 했어요. 곡명을 가슴에 꼭 새기고 이튿날 학교에 가 악대부에 입단, 클라리넷을 불기시작했지요."

-중학교때까지는 음악에 관심이 없었나.

"중학교때 학교에 피아노가 처음 들어왔어요. 음악선생님은 절대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엄명을 내렸죠. 어느날 음악 수업후 선생님이 교무실에 간 사이 선생님의 엄명을 어기고 피아노를 치다 들켜 혼이 난 기억이 있어요. 아마 타고난 끼는 있었던 것 같아요."

-고교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대구에서 포항 집으로 오는 주말이면 기차에서 클라리넷이 불고 싶어 조용한 구석 칸을 찾아 악보를 펴놓고 몰래 연습을 했어요. 또 연습할 장소가 마땅찮아 수도산 계곡에 몰래 들어가 연습을 하곤 했는데, 데이트 중인 청춘남녀로 부터 욕설과 돌멩이 세례를 받은 적이 몇번은 되는 것 같아요."

-지휘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74년 음악대학원을 마친 후 대구시향 단원으로, 중학교 음악 교사도 했었지만 제 내면의 욕구는 그것이 아니었어요. 방황하던 중 대학은사였던 고(故) 김진국 선생께서 지휘자의 길을 가도록 적극 권유했어요. 고민 끝에 결국 79년 지휘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 먹고 네널란드 유학길에 올랐죠."

-경력으로 볼 때 포항시립교향악단 결정이 쉽지 않았을 텐데.

"처음 초빙 제의를 받았을 때 부산대학에 있다보니 거리가 멀 뿐 아니라 포항시립교향악단의 열악한 상황때문에 많이 망설였지요. 또다시 제안을 받고는 '고향의 음악문화 발전을 위해 희생하는 것도 아름다운 삶'이라 생각, 승락했어요. 솔직히 지금까지 오면서 후회도 여러번 했어요. 황무지를 일으켜 세우기가 너무나 힘들었어요."

-포항 음악 문화 및 수준은.

"포항시립교향악단의 경우 지금은 국내 굴지의 교향악단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포항은 이제 더 이상 문화 불모지가 아닙니다. 때문에 시민들도 자부심을 갖고 연주회를 자주 찾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특히 포항은 국악, 민속음악, 서양음악 등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하게 받아들이는게 큰 장점이죠. 하지만 포항지역 대학에 음악 전공학과가 없는게 아쉬움로 남습니다."

-평소 음악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면.

"공부, 공부 또 공부를 해야만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으며, 땀이 배인 연주만이 청중을 감동 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연주만이 감명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연주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말을 후배나 제자들에게 자주 합니다."

-상임지휘자로서 어려움과 보람은.

"외국의 경우 지휘자는 음악만 책임지면 됩니다. 그러나 제 경우는 단원들의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 단원들의 노력으로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간 데 대해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최근 '시사모'(시향사람모임) 탄생은 큰 힘이 되고요."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조언이 있다면.

"포항 예술단 운영이 좀더 전문화되는 등 총체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와함께 시민들께서도 음악회에 오는 것을 두려워 마시고 그냥 오셔서 자꾸들으면 귀가 열리고 음악을 좋아하게 됩니다."

박성완 교수 이력

▷포항시 북구 흥해읍 북송리 태생(1950년생)

▷포항 중앙초등(흥해초등 4학년때 전학), 포항중(20회), 대구 대건고 졸업

▷계명대 음악대학 및 동 대학원 졸업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 음악원 지휘과 최고 과정 졸업

▷안톤케르셰스(당시 암스테르담 필하모니 상임지휘자), 루카스 피스(현대음악가)에게 사사

▷부산대 음악학과 교수 취임(1987년~현재)

▷대구시향 및 울산시향 상임지휘자 역임

▷부산시향, 수원시향, 코리안심포니, 러시아 페테르부르크 스테이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객원 지휘

▷포항시향 상임지휘자 취임(1998년~현재)

▷부인과 아들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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