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꼭지까지 분지른 더위에 네팔인심도 항복
2천500여 돌계단 쉼없는 오르막내리막길
촘롱 산중서 즐기는 과메기에 소주 한잔 '꿀맛'

점점 멀어지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히운출리의 만년설

이번 트레킹의 포터 대장인 파상은 고산족 출신 치고는 아주 잘생긴 사람이다. 나이가 34살에 아들 셋, 딸이 한명 있단다. 잘생긴 덕에 별명을 '미스터 안나푸르나'로 지어 주었다. 키도 크고 몸매도 아주 건장해 말에 비하면 준마(俊馬) 같은 이다. 이번 트레킹동안 늘 필자 곁에서 보좌도 하며 고맙게 대해준 파상 포터대장이다.

 

가이드 대장인 '파상 남겔 세르파' 와는 동년배이지만 분야가 서로 다르다. 가이드 대장 '파상 남겔 세르파'는 네팔에서도 제일로 꼽는 고산 전문 가이드이다.

 

눈이 녹지않아 얼름동굴이 된 곳을 들여다 보는 추선희여사 모습.

올해 5월에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등반가 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3대 난벽 중의 하나인 로체샬(8천400m) 남벽으로 올라 정상정복을 한 네팔 최초의 고산 등반가이기도 하다. 여러 차례 엄홍길 대장과 함께 등반하며 늘 엄홍길 대장의 브랜드가 붙은 자켓과 배낭을 메고 다니는 엄대장 마니아다.

 

지난 5월 로체샬 정상등정으로 엄대장의 8천급 16좌 완등의 순간을 함께한 덕으로 6월에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 왔다가 우리 지역에도 다녀간 적이 있다.

 

산중에서 만난 교복입은 여학생

당시 경북연맹의 강석호 회장과 임원, 2006년도 트레킹 대원들이 참가해 환영회도 열어주고, 포스코 방문과 경주 유적지 답사 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돌아갔다.

 

포항 북부해수욕장에 필자가 데려 갔는데 난생 처음 본다며 신기해하던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7시에 출발해 1시간 30분만에 '데우랄리(Deurali 3천200m)'에 도착했다. 차를 한잔씩 하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올라 올 때 못 보았던 곳도 촘촘히 보면서 내려간다. 하산 길이라고는 하지만 업다운 심한 코스이기에 힘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힌쿠 동굴(Hinko Cave)' 앞을 지나 히말라야 롯지 (2천900m)로 다운한다. 오늘은 촘롱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압박붕대로 응급처치한 수도꼭지

 

올라오는 트레커들과의 인사에 힘이 들어간다. 우린 A,B,C까지 갔다 온다는 자부심이 밴 목소리들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왔다는 남녀를 만나 인사를 나눴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 이곳 안나푸르나였다. 간간이 중국 젊은이들도 마주치고, 일본인들도 다수를 만났다.

 

히말라야 롯지를 지나 밀림지대를 통과해 11시가 돼서야 이틀전 숙박했던 '도반(Dvan)'에 도착했다. '도반'에서의 윷놀이가 정말 신나는 장면이라고 느끼며 다시 한 번 되돌아본다.

 

파상 포터 대장(왼쪽)과 함께

롯지에서 원주서 왔다는 형제들을 또 다시 만났다. M,B,C에서 대규모 트레킹단 때문에 방을 잡지 못해 텐트에서 잤다고 한다. 우리 때문에 고생 한 거 같아 괜히 미안스러웠다. '도반'을 떠나 1시간만인 12시에 '뱀부(Bamboo)'에 닿았다. 날씨가 여름처럼 뜨거워 물만 보면 씻기 마련이다. 여기서 점심을 먹고 떠나기 때문에 다들 수돗가로 몰린다.

 

이인 대장이 머리를 감으려다 플라스틱 수도꼭지와 부딪혀 꼭지가 부러진 사건이 터졌다. 필자가 그런 것도 모르고 씻으러 갔다가 주인 여자가 무어라고 얘기하더니 금방 남자 주인이 달려 와서는 500루피를 내란다.

 

모두들 폭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어느새 그 수도꼭지 값이 매겨 졌는지는 모르나 아주 빠른 계산이다. 응급처치로 손동학 부회장이 압박붕대로 수도꼭지를 감싸 놓고 다들 씻었다. 수도꼭지 배상 대신에 시원한 맥주를 사먹는 걸로 때운다. '산 미구엘 비어'로 목을 축인 대원들이 비싼 대가를 치렀다고 웃는다. 그새 주인 여자의 인상이 풀렸다. 세상인심은 산이나 도시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뱀부'에서 점심은 수제비가 나왔다. 배불리 먹고 나니 박재석 이사 특유의 노랫가락이 나온다. 한낮의 신나는 노래에 히말라야 산중이 춤을 춘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두둥실 바람을 탄다. 뒤돌아보면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히운출리, 마차푸차레가 아직도 고개를 내밀며 손을 흔든다. 하얀 눈을 잔뜩 이고 있는 봉우리들이 더욱 하얗다. 고글을 벗고 바라보면 눈이 부셔 봉우리가 사라지곤 한다. 푸른 숲과 물바람 소리 우렁찬 계곡에 티 없이 맑은 하늘과 어울려 오르내리는 인간들에게 같이 놀자며 손을 내민다. 오르막 내리막의 연속인 산길을 부지런히 걸어간다. 오후 3시가 돼 '시누와(Sinuwa)'에 도착했다. 이제 다 온 것 같다. '촘롱'이 빤히 보인다.

 

'시누와'에서 '촘롱'까지는 계곡으로 엄청 내려갔다. 다시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고된 계단길이 남아 있다. 내려가는 길에 만난 어린 학생들이 보기 드문 교복들을 입고 삼삼오오 올라온다. 아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간식으로 있던 초콜릿이며 사탕들을 나눠준다. 애들의 웃음소리가 맑은 메아리가 되어 계곡을 울린다.

 

'촘롱'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아이들이 다니기에는 길이 험한 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잘들 다니는 것 같다. 네팔은 의무 교육이 아니라서 공부 시키는 게 그리 녹녹치만은 않은 모양이다. 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에서부터 돌계단이 이어진다. 까마득히 높은 '촘롱'이 손에 잡힐 듯 하지만 그리 만만하지 않다. 시간과 계단 숫자를 세어보기로 하고 부지런히 헤아려 나간다. 거의 쉬지 않고 올라가면서 중얼거리며 계단 숫자 세기에 열중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다. 마을 복판을 지나 다시 올라갈 때 왼쪽 고관절 쪽에 고통이 온다. 왼다리를 올리기가 어렵다. 그래도 올라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롯지 앞에 당도해 시간을 보니 꼬박 40분 걸렸다. 계단 숫자는 필자가 헤아린 게 2,544개였다. 다른 대원들도 대충 그 정도인걸 보면 무려 2천500여개의 계단을 올라온 것이다. 파김치가 따로 없다.

 

롯지에 들어서는 순간 다들 퍼진다. 아직 오지 못한 대원들이 대부분이다. '촘롱'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4시 47분, 여기서 안나푸르나의 마지막 밤을 보낼 예정이다. 지난 16일 숙박했던 '칼파나 게스트 하우스'에서 같은 방에 배정됐다.

 

이번 트레킹단에서 최고 연장자인 이경수 박사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강준호 사장과 부인이 아주 힘들게 올라왔다. 부부가 함께 온 유일한 두 분은 정말 우리가 부러워 할 만큼 정이 각별하신 분들이다. 강사장이 부인을 위해 연신 바란스를 맞추어 나가느라 애를 쓴다. 육십 중반 넘은 나이에도 어려운 트레킹에 참가한 용기가 대단하다. 카메라를 잘 다루고 좋아 하는 멋을 아는 사람이다.

 

'M,B,C'를 출발해 '촘롱'까지 10시간을 운행한 셈이다. 내일은 '포카라' 까지 가기 때문에 산중에서 숙박은 여기가 끝이다.

 

쿡 대장 '나왕'이 데포(장비나 식량 등을 일정 장소에 보관시켜 놓음) 시켜 놓은 소주와 과메기가 식사 전에 나온다. 점심을 수제비 한 그릇으로 때운 대원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고 돌계단 오르느라 진을 다 뺀 몸에 활력을 넣는 데는 안성마춤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포항 과메기가 전국의 입맛을 돋우더니 급기야 외국으로 진출한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네팔의 산속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이재동 계장(청송군청)이 내어 놓은 청송 꿀 사과도 늘 한몫을 한다. 의성에서 흑마늘 즙을 가져온 김경경 사장이 룸메이트인 이석우 사장(경북연맹 이사)에게만 주려다 피로에 겹친 대원들을 위해 보따리 채 내어 놓는다. 경북의 특산물이 죄다 나온다. 안나푸르나 사우스봉과 히운출리봉 그리고 마차푸차레봉이 병풍처럼 둘러싼 '촘롱'에서의 만찬은 산중에서의 마지막 성찬이라 특별히 닭백숙 요리가 등장한다.

 

푸짐한 닭요리에 소주와 럼주가 함께하며 '촘롱'의 밤은 대원들의 불그스레한 얼굴만큼 이나 따뜻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다이닝룸에 웃음꽃이 피고 다섯 밤을 산속에서 지낸 진한 동료애가 넘쳐 난다. 데포 시켜 놓은 소주가 다 떨어지자 감춰 두었던 팩소주를 우루루 쏟아 붓는 박분자 여사의 배포에 다들 감동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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