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철 가야컨트리클럽 대표이사…동지중·고동문회 이끌며 MB당선 기여
제일·신한은행 등 금융통…언젠가 고향 돌아가 고향발전 앞서겠다

논어에 '見利思義(견리사의)'란 말이 있습니다. 즉 '利'를 보면 '義'를 생각하라는 뜻이죠. '利'라는 물질적 욕구가 갈등의 불씨라면 '義'는 이를 치유하고, 예방하는 정신적 근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인간관계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능력 못지 않게 각계 각층의 헌신적 노력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그중 하나가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를 하나로 묶어 이 후보의 철학과 '경제살리기 적임자 이명박'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는 작업이었다.

한나라당 선대본부 산하에는 '2007 선진국민연대'라는 조직이 있었다. 이 조직은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를 하나로 묶는 한편 현장을 누비며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주임무였다.

'2007 선진국민연대' 산하에는 235개 시민·사회단체가 활동했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임무를 부여받은 뒤 활동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일포럼'이었다.

'영일포럼'은 한마디로 이 후보의 동문 모임인 재경 동지중·고등학교 동문회 차원의 선거 사조직이었다. 이들 회원들은 이 후보와 같은 동지상고 선·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선봉에서 사심없이 뛰었다.

이들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으로 35만명이란 엄청난 회원을 확보했다. '2007 선진국민연대' 산하 단체중 회원 가입이 가장 많았으며 주로 필드에서 뛰었다.

이 '영일포럼'을 진두지휘한 인물이 바로 재경 동지중·고동문회장이자 MB의 동지상고 7년 후배인 권두철(60·동지상고 16회) 가야컨트리클럽 대표이사였다. 그는 지난 2006년 2월, MB가 5년간 이끌어 오던 재경 동지중·고 동문회장직을 이어 받았다. 이때부터 그는 'MB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 발벗고 나선 것이었다.

최근 그는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하다 충분한 설명을 듣고 응했다. 왜냐하면 지금 신문에 나오면 마치 자신이 일신공신처럼 비쳐지기 때문에 적절치가 않다는 것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됐다. 운동으로 단련된 체격인 듯 건장한 체구였다. 외모처럼 언변 또한 굵직하고 시원시원했다. 선이 굵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표 공략에 총력

그를 비롯한 재경 동지 동문회원들은 이번 대선에서 주로 밑바닥을 훑었다. 이를위해 일단 전국의 동지중·고 동문을 하나로 묶는것이 일차적인 목표였다.

어느정도 동문들이 결집되자 역할을 분담했다. 그중 200여명은 직접 발로 뛰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나머지 500여명은 지역별로 비 동문들을 규합하는 일을 맡았다.

"'가능한 한 지역 유력인사들은 만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조직이 맡았어요. 왜냐하면 그만큼 뜸을 들여야하고, 설득을 하려면 시간과 힘이 들기 때문이죠. 저희들의 목표는 허리 밑 서민들이었습니다. 말단(서민)도 1표, 사장(지역유지)도 1표 아닙니까. 되돌아보면 상당히 주효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특히 MB의 취약지역인 호남, 충청, 강원지역에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호남 등 충청, 강원지역에서 예상외의 득표를 한데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며 "일일히 현지인들을 많나 꾸준히 설득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같은 동문들의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려는듯 이명박 당선인는 지난해 말 서울에서 열린 재경 동지중·고 동문 망년회에 참석, 동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 자리에는 박승호 포항시장을 비롯 포항지역 인사들도 대거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ㆍ중ㆍ고때 줄곧 1등

그는 포항과 경계인 영덕군 남정면 부흥리에서 태어나 남정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농부였던 부친이 초등학교때 돌아가시자 집안 살림은 말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졸업후 포항의 친척집에서 동지중학교와 동지상고 야간부를 다녔다. 어려운 집안 살림때문에 주간에는 이곳 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용돈을 벌었다.

중·고등학교때도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은 탓에 등록금 걱정은 하지 않았다. 활발한 성격에다 공부와 운동(고교때 태권도 공인 2단)마저 뛰어남에따라 친구들로부터 늘 인기가 많았다.

그는 "아마 당시 야간부의 경우 전교 1등만 등록금 전액 면제 혜택을 준 것 같다"며 "등록금 면제가 아니고서는 학교를 다닐 형편이 안되었기 때문에 주경야독 할 수 밖에 없었다"고 그때를 회고했다.

그는 66년 말 졸업반 동기생 중 유일하게 은행(제일은행)에 공채로 입사,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은행을 다니면서도 학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때마침 고향인 제일은행 포항지점에 근무할 기회가 생겼다. 1977년 발령이 나자마자 그는 포항1대학 경영학과에 입학, 1980년에 늦깍기로 졸업했다.

그는 제일은행 대리에서 82년 신한은행 설립과 함께 창립멤버로 자리를 옮겼다. 그후 서울시내 점포장, 영업부장, 영남지역본부장 등을 거친 뒤 서울레이크 힐스 골프장 대표(2001년) 및 신한국상호 저축은행 대표(2004년)를 차례로 지냈다. 2006년 12월부터 신한은행 투자계열의 가야CC 골프장(경남 김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고향에 돌아가고파

그는 후배나 직원들에게 '의리' '믿음' '원칙'을 강조한다고 했다.

"한 방향으로 묵묵히 걷다보면 바른 길이 되고, 지름길이 된다고 봅니다. 한마디로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됩니다. 비록 불편하고, 냉랭하고,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지나고 보면 오히려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발생되는 비용과 폐해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가까이 하고 있다고 했다. 책을 통해 부족함을 채우고, 새로운 것을 얻기위해서다.

그는 고향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 '수구초심(首邱初心)'이란 말이 있듯 요즘은 친구들과 고향 이야기를 할 때는 가난하고, 배고팠던 기억보다도 그 시절이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고향 친구들과 옛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 언덕이 보고 싶은거죠. 언젠가 돌아갈 것이고, 빠른 시간내 돌아가고 싶습니다. 고향 발전을 위해 마음만 앞섰지, 물질적인 도움을 드리지 못해 늘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일 뿐입니다."

'황금알 낳는 거위' 옛말

그는 골프장 CEO로서 골프장 사업은 이제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미 제주를 비롯 전남권에서는 회원권이 억대에서 천만 단위로 급락했습니다.

경영 악화로 인해 회원제에서 대중제로 전환하거나, 매각하고 있는 골프장도 많습니다.

과다한 세금으로 인한 경영상의 어려움과 함께 신설 골프장에 비해 골프 인구가 뒤따르지 못해 매출이 크게 감소하는게 큰 이유입니다."

때문에 자발적인 체질개선, 비용절감, 생산성 제고의 경영혁신 노력을 강조했다. 그것도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추진하지 않는다면 수년내 존폐 위기에 몰리는 골프장이 적지않다는 것.

그는 이같은 골프장들의 위기 현실을 감안해 두가지를 계획,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직원 스스로가 변화함으로써 기업이 변화되도록 해야 한다는 소프트웨어적인 의식 혁신이라는 것.

또 하나는 철저한 코스관리로 즐거운 플레이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부족하고, 노후화된 시설을 개선하는 하드웨어적인 환경혁신이라고 강조했다.

권두철 대표이사 약력
▷영덕군 남정면 부흥리 태생
▷영덕남정초등, 포항동지중·고졸업(16회), 포항1대학 졸업
▷경희대 경영행정대학원 노사인력관리학과 졸업
▷제일은행 공채 입사(66년)
▷신한은행 창립멤버 참여(82년)
▷신한은행 서울시내 지점장, 영업부장, 영남지역본부장 역임
▷서울 레이크힐스골프장 대표이사(2001년)
▷신한국 상호저축은행 대표이사(2004년)
▷경남 김해 가야컨트리골프장 대표이사(2006.12~현)
▷재경 동지중·고동문회장(2006.2~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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