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대일외교 본질·지혜 서술한 2000㎞ ‘역사답사기’

‘통신사의 길을 가다’(한길사)는 저자 서인범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총 길이 2000㎞에 달하는 통신사의 길을 직접 따라가며 조선시대 대일외교의 본질과 지혜를 문학적 문체로 유려하게 서술한 ‘역사답사기’다.

철저한 사료 조사에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이와의 인터뷰, 박물관 견학 등이 더해져 역사적 진실에 최대한 근접하면서도 생생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당시 조선이 적국(敵國) 일본과 어떻게 관계를 정상화하고 각종 문제를 풀어냈는지 집중적으로 다루어, 오늘 첨예하게 대립 중인 우리와 일본의 관계를 돌아보게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통신사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았다. 부산에서 출발해 쓰시마(對馬島)와 세토나이카이, 오사카와 교토를 지나, 도쿄(에도)에 도착한 뒤, 닛코(日光)를 방문하기까지 통신사가 지나간 주요 경유지 58곳을 직접 답사해 통신사 관련 저서 중에서도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여행기로서도 충실해 400여 개에 달하는 현장 사진과 도판을 싣고, 통신사가 걸은 길을 인포그래픽 형식의 지도로 만들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통신사의 길을 가다’는 저자의 전작 ‘연행사의 길을 가다’(2014, 한길사)의 연장선에 있는 책이다. 연행사는 명나라와 청나라에 파견된 사신으로 조공을 바치고 조선과 중국 사이의 각종 외교 현안, 가령 압록강의 영토 문제, 왕세자 책봉 문제 등을 해결했다. 당시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차지한 위상을 생각하면 연행사는 굉장히 중요한 직책이었다.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일본으로도 파견되었으니 바로 통신사다. 당시 조선이 적국 일본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통신사 파견은 전적으로 일본의 요청에서 시작된 일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권력이 재편된 일본은 조선과의 관계회복을 가장 중요한 일로 꼽았다.

조선과 일본을 중계하며 먹고 살았던 쓰시마의 노력이 있긴 했지만, 무엇보다 이에야스의 국제정세 판단이 한몫했다. 그는 조선과 관계를 회복하고 문물을 교류하는 게 일본의 국익을 위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관동에 있었기 때문에 임진년의 일에 대해서 미리 알지 못했소. 지금은 히데요시의 잘못을 바로잡았소. 진실로 조선과 나와는 원한이 없소. 화친하기를 바라오.” (23쪽)

1607년의 첫 파견 이후 200여 년간 통신사는 총 12번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의 요청으로 파견된 통신사지만 그들을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 물론 중국을 대할 때보다 급을 낮춘 건 사실이지만 이는 당시 동아시아 정세를 고려했을 때 상식적인 처사였다.

조선도 일본과의 관계회복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일본이 아우의 처지로 조선과 중국에 잘 대하길 바랐을 뿐이다. 물론 일본은 늘 조선과 대등하게 대접받고 싶어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쪽이 사신 파견을 먼저 요청하는지, 호칭은 어떻게 정리하는지 등을 둘러싸고 미묘한 신경전이 끊이질 알았다. 두 국가의 이해가 부딪히는 이 아슬아슬한 경계선에서 통신사는 국익을 위해, 또 두 국가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부단히 애썼다.

통신사가 일본에 다녀오는 데는 최소 반년, 길게는 1년까지 걸렸다. 따라서 당시 외교는 요즘처럼 비행기를 타고 가서 장관이면 장관, 총리면 총리, 대통령이면 대통령을 만나고 오는 방식과는 개념부터 달랐다. 통신사가 길에서 막부 관료와 일본인을 수없이 만나는 일 자체가 넓게 보아 외교였다. 당시 외교를 논하며 ‘길’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저자는 통신사의 길을 따라 40일간 총 2000㎞를 이동했다. 단일 학자의 통신사의 길 답사로는 최대 규모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성과도 컸다. 몇몇 박물관의 수장고에 직접 들어가 통신사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촬영하는 역사학자로서 잊지 못할 경험도 했다. 그런 노력으로 국내에서는 보기 힘든 여러 도판을 책에 실을 수 있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생생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조선시대 통신사처럼 수많은 일본인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여전히 통신사를 기억하고, 통신사의 행차를 기념한 축제를 열고 있었다. 그들의 입이 아니었다면 기존 사료의 빈 곳을 생생하게 복원할 수 없었을 것이다.

‘통신사의 길을 가다’는 총 6부로 구성돼 있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는 순간부터 화려한 에도성에서 장군을 알현하는 긴장된 순간까지 한 번 읽으면 잊지 못할 통신사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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