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각별히 지내던 지인의 공장이 화재로 소실되었다는 소식이다. 바람이 엄청나게 불던 지난주에 일어난 화재가 하필이면 지인의 공장을 덮칠 줄이야. 대기업에서 생산되고 남은 제품을 재가공하는 업체로 경기도 좋지 않은 때, 설상가상으로 화재보험도 들지 않았다고 하였다. 불타버린 잿더미 건물 잔해 위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는 그에게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었다.

‘사월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꽃을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섞으며, 봄비로 생기 없는 뿌리를 깨운다’영국의 시인 T.S. 엘리엇은 대표 저서인 황무지를 통해 20세기 서구 문명의 황폐화를 잔인한 달 4월에 비유했었다. ‘사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표현함은 단순히 새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섭리를 잔인하다고 한 것이 아니며, 되풀이되는 사건 사고를 두고 말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눈송이처럼 날리는 벚꽃과 라일락꽃의 절정을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계절이 잔인한 달로 기억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4월의 상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식목일 하루 전 강원도 고성 산불은 재난사태로부터 국가가 얼마나 빨리 대응하는가 하는 시험 무대와 같았다. 도로변 전신주 개폐기에서 발화가 시작된 산불이, 고성과 속초시 전역으로 번져 막대한 피해를 남기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급박한 국가재난의 상황에도 정부의 적극적 대처와 피해규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은 과거와는 달랐다는 점이다. 사고와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오지만, 인명을 지키고 피해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은 후속적 대처 이른바 골든타임이다. 고성산불은 이전과 다르게 재난대처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언제든 재해와 사고가 없는 달이 있을까마는, 우리의 4월은 유독 아픈 기억이 많은 달이다. 그만큼 상처가 많았다는 증거이다. 4·3희생자추모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일. 4·19혁명 기념일을 비롯한 행사가 즐비한 4월, 그중 세월호 그날에 대한 기억은, 우리 사회가 가진 트라우마이다.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하는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으며,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지며 미안해지는 것도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판단과 대처로 인해 고귀한 생명을 잃었다는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사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지금, 언제까지 세월호를 찾을 것이냐는 비아냥거림과 유가족의 인터넷 쇼핑 내역과 통장 정보까지 수집해 보고했다는 기사는 충격이다. 또한 5년의 긴 세월 동안 분노와 슬픔의 나날을 보내는 유가족에게 마음의 위로는커녕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막말 정치인을 볼 때, 우리 사회의 통합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의 죽음을 두고 “진짜 징하게 해쳐 먹는다.” 가히 입에 담기도 힘든 글을 올려 유가족을 분노하게 하는가 하면 “이제 징글징글해요” 공당의 중진의원의 막말은 5·18망언에 이어 가히 수준급 이상이다. 남의 아픔마저도 정치에 이용하는 영혼 없는 정치인의 망언은 언제나 그랬듯이 진정성 없는 사과를 거쳐 윤리위원회의 흐지부지한 징계로 끝이 날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와 유사한 망언은 끝없이 재생될 것이다.

사고나 재난은 불특정 다수에게 예고 없이 찾아온다. 우리는 모두가 불특정다수이다. 우리 모두는 언제든 재난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잠재적 피해 당사자이다. 만약 당신의 공장이 화재로 인해 소실되거나, 가족 중 누군가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세월호의 아픔을 차마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반려견의 아픔도 슬퍼하며 함께하는데, 하물며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내 이웃의 아픔을 외면할 수야 없지 않겠는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잠재적 피해 당사자인 우리 모두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사고를 예방하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세월호 그날을 영원히 기념해야 할 것이다.

윤종석 구미지역위원회 위원·정치학박사
하철민 기자 hachm@kyongbuk.com

부국장, 구미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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