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가 660년, 고구려가 8년 뒤인 668년에 멸망했다. ‘삼국 전쟁’에서 이긴 신라는 고구려가 멸망한 해에 통일을 완성했다.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은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했다. 텐지(天智) 일왕은 서둘러 규슈에 도독부 ‘다자이후(太宰府)’를 설치하는 등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그러나 일본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신라나 당과의 관계가 원만하게 풀렸다. 일본에는 오히려 대륙의 선진 문물이 급속하게 흘러들어 새로운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7~8세기에 걸쳐 주로 일본 고관들이 읊은 시가도 ‘삼국전쟁’ 이후 일본으로 간 한반도 도래인에 의해 전해진 선진 문화의 한 결과물이었다. 특히 신라 영역인 경상도 고대 한국어를 일본식 이두체로 바꿔 노래한 시의 형식이 당시 일본에서 성행했다. 그 대표적인 시가집이 ‘만요슈(萬葉集)’다. 이 시가집은 8세기 후반 오토모노야카모치(大伴家持)라는 시인이 주도해 4516편의 시를 필사본으로 엮은 것이다.

730년, 일본 나라(奈良)시대의 가인 32명이 다자이후 장관 오토모노다비토(大伴旅人)의 집에 모여 뜰에 핀 매화를 보고 와카(花歌)를 지었다. 오토모노는 ‘초춘영월 기숙풍화(初春令月氣淑風和·새 봄의 좋은 달, 공기 맑고 바람 온화하다)’고 노래했다. 만요슈 제 5권에 실려 있는 ‘매화의 노래’다.

다음 달 1일 즉위하는 나루히토(德仁·59) 일왕 시대에 맞춰 일본 정부가 지난 1일 발표한 새 연호를 이 시에서 따와 ‘레이와(令和)’로 정했다. ‘영월(令月)’에서 ‘아름답고 좋다’는 뜻의 ‘영(令)’, ‘풍화(風和)’에서 ‘평화롭다’는 ‘화(和)’를 각각 따왔다.

이 연호를 추천한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 오사카여대 명예교수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평화를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고 했다. 그런데 아베 신조 총리는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문화를 키우자는 뜻”이라고 맘대로 해석했다. 아베는 스스로 정한 연호 ‘레이와’의 참뜻인 ‘평화’를 애써 외면하는 듯하다. 최근 한일관계는 일제 강제징용 배상 문제 등으로 최악의 상황이다. 연호가 바뀐다고 갑자기 달라질 것은 아니겠지만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 점에선 일본이 새 연호 ‘레이와(令和)’의 뜻처럼 문명국 다운 면모를 보여주길 기대한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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