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왔어도 봄 같지가 않다는 말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정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 같다.

올 초 정치 편향 논란이 일었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을 시작으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 2기 내각 장관 후보자들의 부동산 투기 논란 등 꽁꽁 얼어붙은 정국이 봄이 오면서 또다시 청와대가 주식투자 논란이 제기된 이미선 헌법재판관 임명까지 강행하더니 이제는 선거 룰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한국당을 제외함으로써 제1 야당을 정국 핫바지로 만들어 정치를 시계(視界) 제로 상태로 만들었다 .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소방공무원 국가직화 등의 민생 현안과 강원도 산불, 포항 지진 피해 지원이 포함된 정부 추경안 논의가 절실한 시점에 제1야당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여당이 모를 리가 없음에도 강공드라이브를 거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인사 난맥상 정국을 쓰나미처럼 한 번에 쓸어버리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여야 정치 갈등과 국회 파행의 근본 발단은 바로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이 자리 잡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민정수석실의 검증 미비로 인한 인사 실패는 참담한 수준이었다. 문재인 정부 집권 초기부터 제기된 장관 후보들의 자질 의혹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어렵다. 결국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방해하는 인사 실패가 잇따르자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인사 참사의 실질적 책임자인 조 수석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설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 초기 통상 검찰 몫이었던 민정수석 자리에 비(非)검찰 출신 개혁성향 법학자인 조 민정수석의 중용은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민정수석이 어떤 자리인가. 검찰·경찰·국가정보원·국세청·감사원 등 5대 권력기관을 쥐락펴락할 수도 있고, 대통령 친인척 관리와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등을 맡는 자리다. 또 산하에 민정·반부패·공직기강·법무비서관을 두고 공직사회 기강, 법률 보좌, 민원업무도 챙긴다. 청와대 내 감찰 조직의 수장으로서 사실상 ‘수석 중의 수석’이다. 그래서 민정수석은 막강한 권한만큼 책임 또한 무겁다. 국록(國祿)을 먹고 있는 조 수석에게 여론이 책임 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민정수석 자리에 맞지 않는 조 수석의 행보 역시 문제다. 조 수석은 SNS를 통해 법원 수사와 관련해 특별재판부 설치가 필요하다고 훈수를 두고, 특정 법관에 대한 인신공격성 글을 올리는 등 삼권분립 위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특정 정치 성향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편향적 정치 색깔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검찰 개혁과 권력기관 개혁 의지를 확고히 뒷받침할 적임자로 판단”한다며 조 수석 임명 배경을 밝힌 바 있다. 조 수석을 둘러싼 일련의 논란들을 종합해보면 조 수석이 개혁 적임자가 아니라 개혁 대상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마지막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출 수 없다면 청와대에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조 수석이 과연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는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17 세계 시민상’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며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촛불’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난 정권교체 요구가 반영된 결과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하는 데에는 무거운 책임감이 따르기 때문이다. 촛불혁명의 진정한 성공은 문재인 정권이 성공적이어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반대로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신을 훼손한 신(新)적폐로 낙인 찍 힐 수도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정국 혼란의 단초를 제공한 조 수석을 ‘촛불 정권의 상징’이라며 조 수석의 경질 논란을 야권의 공세 정도로만 받아들일 일이 아닌 것 같다. 권력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촛불민심’이다. 국민이 원해서 촛불혁명도 일어났고 국민이 원해서 대통령도 하야(下野)를 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헌법 정신을 실천할 의지가 있다면 조국(曺國) 수석을 택할지 아니면 조국(祖國)을 택할지 용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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