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찾아오면 길을 건넌다
아이들이 지나간 계단을 / 조심스레 오른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 늘 앞서간 사랑을 모색했으나
미련 없이 달리는 이별의 속도는
추월의 순간까지 틈을 내주지 않았다

마침내 멈춰선 공중
한 때는 나도 가위 바위 보를 하며 올랐던
짐승의 등허리
해가 뜨고 질 때마다 육중한 포효 대신
비둘기의 날갯짓을 내뱉는 / 기형의 스핑크스를 본다

온종일 쭈그리고 앉아
스스로 문답하는 청춘에게 짐승은
지나간 발소리를 들려준다

사랑은 몸에 새긴 행선지로 길을 잃는 것,
오래 멈춘 사람에겐
막다른 길에서만 그린 허공의 지도가 있다

비가 내리는 날 / 병아리를 사러왔던 아이들을 따라
부재하는 약속을 이야기한다

슬픔이 수수께끼가 되어 계단을 내려간다



<감상> 이별은 가속 페달을 밟고 나를 추월해간다. 제 아무리 추월하려 해도 카레이서처럼 이별이란 놈은 틈을 주지 않는다. 육교라는 짐승은 내게 지나간 발소리만 들려줄 뿐이다. 일찍이 사랑은 몸에 새긴 행선지로 나를 끌고 가고, 막다른 길에선 길 없는 허공의 지도만 펼친다. 나는 허공의 지도뿐만 아니라 구석구석에 내가 혹은 그대가 뿌려 놓은 냄새 지도만 찾아 다녔는지도 모른다. 냄새의 연계선은 아직 끊어지지 않고, 알 수 없는 슬픔은 계단을 오르내릴 뿐이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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