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서병진 경주지역위원회 위원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시기 전해 당신의 모교 100주년 기념 전시회에 자화상 한 점을 내었단다.

얼굴 윤곽만 그린 단순한 그림. 볼수록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자화상. 제목이 ‘바보야’라고 붙여진 그림. “내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겠어요. 다 같은 인간인데.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내가 제일 바보처럼 살았는지도 몰라요”라는 말씀과 함께.

정말 인간적인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이 그분을 더 순수하게 만들었다.

나는 ‘바보처럼’이 아닌 바보로 살아왔다.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바보’라는 말을 듣기 싫어했다. 바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다. 틈만 있으면 교직에서 교장으로 퇴직했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사람들에게 “나를 인정해 주세요”라는 소리 없는 몸짓이었다.

입으로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람대접을 받으려고, 모자람이 적은 사람인 양 가면을 쓰고 힘겹게 살아왔다. 참 바보 같은 삶이었다.

한번은 책임을 맡아 행사를 치른 적이 있었다.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일 시켜놓고 챙겨주지 않아 섭섭합니다. 뒤치다꺼리 다 했는데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하면서 불만을 터뜨리는 후배가 있었다. 그때 변명하지 않고 “그래요, 그렇겠네요. 내가 원래 좀 모자랍니다. 많이 섭섭했겠어요. 미안합니다”라고 했더니 그 후배가 회의 끝나고 찾아와 오히려 미안해 했다.

정말 바보짓으로 사리판단을 잘못하여 남에게 누를 끼칠 정도가 아니라면 바보로 살아가는 것이 편하다.

바보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이 어리석고 부족한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모자라는 대로 사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만큼 자유로워진다. 자신에 대한 평가에 덜 민감해지고, 어떤 비난에도 마음 아픔이 적어진다. 바보가 됨으로써 날개가 생기고 자유를 얻으며, 세상이 풍요로워진다.

내 자신이 모자라는 사람임을 인정하고부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남보다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논리적, 지적이지도 않다. 과감하게 실천에 옮기는 용기도 부족하다. 설거지하다 그릇도 자주 깨고, 일을 하다 실패도 자주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사람이 나를 대할 때 편하게 대하는 것 같다.

일을 잘 처리하는 사람 앞에서 주눅이 드는 것 같은 부담감을 주지 않는 모양이다. 바보가 되면 따스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된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주눅 들지 않는다. 부족함, 바보스러움이 나의 장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내가 바보이기에 남의 결점을 찾아낼 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똑똑해 보이고 능력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세상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손해를 보거나 하는 일이 실패를 하더라도 내 탓으로 알고 반성하며 살았다. 그래서 크게 이룬 것 없이 살아도 마음이 편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가까이 두고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을 인덕(人德)으로, 나의 장점으로 착각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착각이라도 좋다. 나는 기꺼이 이 장점을 살려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모자라면서도 당당하게 살아갈 일이다.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조심하면서 우직하게 살아 나 자신을 지켜 갈 일이다.

진정한 어리석음이야말로 가장 큰 지혜임을 온전히 깨달을 때까지.

이 어리석음이 서화담의 시구 ‘부귀유쟁난하수 임천무금가안신(富貴有爭難下手 林泉無禁可安身)’의 경지에까지 나아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이것 또한 지나친 욕심. 그냥 바보로 사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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