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산불양토양(泰山不讓土壤) 하해불택세류(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흙덩이 하나도 마다하지 않고, 큰 바다는 가는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 진시황에게 포용정치를 진언한 이사의 ‘간축객서(諫逐客書)’에 있는 한 대목이다. 진나라에서 봉록을 받고 있는 타국인들을 추방하라는 진시황의 ‘축객령(逐客令)’에 항의, 이사는 천하의 인재와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간축객서’ 상소를 올렸다.

이사의 상소를 받아들인 진시황은 ‘축객령’을 거둬들이고 이사를 재상으로 승진시켜 국정 전반을 맡겼다. 이사는 인재를 널리 포용해야 한다며 포용정치를 주장했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포용력이 티끌만큼도 없는 ‘내로남불’이었다. 젊은 시절 순자 밑에서 동문수학하면서 자신에게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준 한나라 왕족 출신 한비자를 모함,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

박학다식하고 매사에 자기보다 한 수 위인 한비자의 등용을 막기 위해 진시황에게 참언을 계속 올려 결국 처형당하게 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전국의 유생들이 중앙집권적 통치를 반대하고 봉건제 부활을 주장하자 이들을 탄압하기 위해 진나라 역사 이외의 책들을 모두 불사르고 유생들을 구덩이에 파 묻어 죽이는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주도해 잔인한 정치인의 악명을 남겼다.

진시황이 지방 순시 중 급서하자 간신 조고는 부귀영화에 눈 먼 이사와 작당, 진시황의 유서를 조작해 큰아들 부소를 제치고 차남 호혜를 황제의 자리에 앉혔다. 호혜가 황제로 등극하자 조고는 권모술수에서 자기와 맞수인 이사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사는 조고의 음해에 의해 역모죄로 호혜에게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腰斬刑)을 당했다. 코와 두 발이 잘리고, 목과 허리마저 두 토막이 난 ‘내로남불’의 종말은 비참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명박 정권 시절 신문칼럼에서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거나 주소를 옮길 여력이나 인맥이 없는 시민의 마음을 후벼 판다”고 이명박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위장전입을 맹비난했다. 하지만 자신이 검증한 장관 후보자 가운데 강경화 외교 장관, 유은혜 교육 장관 등 위장전입 후보자들이 차고 넘쳤다. 인사 파행을 질주하는 조국의 ‘내로남불’이 이사의 인생행로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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