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21일 오전 포항 시내에서 관광버스 한 대가 북구 송라면 내연산을 향해 출발했다. 이 버스에는 ‘보경사 문화재 관람료 폐지를 위한 포항시민 산행대회’ 참가자 50여 명이 타고 있었다. 포항경제정의실천연합이 주관한 이 행사는 ‘내연산 등반을 하려고 하는데 보경사가 등산로 입구에서 문화재 관람료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등산객과 사찰 사이에 수십 년 간 마찰을 빚고 있는 곳은 포항 내연산 보경사와 청송 주왕산 대전사 등 전국에 24곳이나 된다. 절에 가지 않고 등산만 하려는데 문화재 관람료나 국립공원 입장료라며 꼬박꼬박 입장료를 받고 있어서 ‘산적 통행료’, ‘김선달 통행료’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런데 지리산 천은사가 이 ‘산적 통행료’를 폐지키로 했다. 천은사를 관람하지 않고 그냥 지리산 노고단만 등산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입장료를 받지 않기로 해서 국민의 박수를 받고 있다. 천은사는 32년 전인 1987년부터 통행료를 받았다. 처음에는 국립공원 입장료와 함께 관람료를 받았고,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뒤에도 계속 받아 왔다.

천은사 매표소는 지리산 노고단을 가려면 꼭 지나야 하는 지방도로에 있어서 절에 갈 생각이 없는 탐방객에게까지 통행료를 내라고 해서 불만이 계속 제기됐고, 소송까지 이어졌다. 소송에서 모두 등반객 측이 승소했지만 소송 당사자 74명에게만 적용돼 문제가 계속 됐다.

그러던 것을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 문화재청, 전남도, 천은사 등 8개 관계기관이 29일 오전 11시 전남 구례군 천은사에서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폐지 업무협약을 맺었다. 천은사는 협약식과 동시에 지방도 861호선에 자리 잡은 매표소를 철수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보수와 관광 자원화를 적극 돕고 천은사 운영기반조성 사업도 인허가하기로 했다.

물욕을 멀리한 불교 교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산적’이니 ‘김선달’이니 하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입장료 징수를 고집하는 것은 종교적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경북의 보경사나 대전사 등도 천은사의 선례를 따라 사찰 입장료 갈등을 푸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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