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먹이다가 / 뱀을 잡았어요.
기분이 좋았어요.

뱀을 보면 상성이 생각이 나요.
지난 해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지나가는 뱀을 잡아
오백 원을 받은 뒤부터 / 우리들은 뱀만 보면
돈 봐라 하고 소리쳤어요.

선생님이 파랗게 질려
우리들을 야단치시는 모습이
너무 우스웠지만 / 우리는 웃지는 않았어요.

엄마도 누나도 산에 나물하러 가서는
양말 속에 한두 마리 / 뱀을 잡아 오는데
뱀을 무서워하는 선생님이 우스웠어요.

연필도 공책도 / 방위성금도 낼 수 있는
뱀 한 마리를 / 소를 먹이다가 잡았어요.





<감상>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담겨 있네요. 우리에게 소를 먹이러 산에 가는 게 주된 일이었고, 거기서 뱀을 잡아 읍내 뱀꾼에게 팔아서 용돈 벌었지요. 부모님이 용돈 줄 형편이 되지 못했으니, 뱀이 새파란 지폐 오백 원짜리로 보이는 게 당연했어요. 야단치는 여선생님 앞에서는 소리 내어 웃지 못하고 속으로만 우스웠지요. 지금 생각하면 내게 용돈을 선사한 뱀에게 너무 고맙고 미안한 생각이 드네요. 자연과 더불어 살지 못하는 요즘 어린이들이 이 동시를 이해할지 씁쓸한 생각마저 드네요.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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