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허성우 사)국가디자인연구소 이사장

집권여당의 원내 전략을 총괄할 새 사령탑이 선출되었다. 문재인 정부 3년차이자 20대 국회 마지막 여당 원내대표로서 이번 신임 원내대표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짐과 역할이 부여돼 있다. 신임 원내대표는 정부 정책에 수반되는 법안 처리의 키를 쥐고 있는 만큼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는 중책과 더불어 민주당의 내년 총선(總選)을 책임져야 할 막중한 책임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대야(對野) 협상 창구로서 꼬일 대로 꼬인 정국(政局)을 시급히 정상화 시키는 일이다. 선거제·검찰개혁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따른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국회 파행이 거듭되자 탄력근로제,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등 민생 법안들이 모조리 발목 잡혀 있고, 미세먼지로 인한 국민 고충 해결과 민생경제 지원을 위한 6조7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도 정국(政局) 경색 때문에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민생을 살피라는 국민의 따가운 여론이 극에 달해 있는 만큼 협치(協治)가 불가피해진 정치 구도 속에서 집권여당의 새 원내사령탑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은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돌이켜 보면 여·야는 대결과 투쟁의 역사를 반복해 왔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국회의원들의 지휘자인 원내대표가 있었다. 우리 정치사에 있어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는 대화와 타협의 모습보다는 여권의 방침을 밀어붙이는 집행자이거나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중대 역할을 자청해왔다. 그러나 헌정 사상 초유의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로 기록된 13대 국회는 예외로 꼽힌다. 13대 국회는 청문회 제도를 처음으로 도입해 제5공화국과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지방자치법 제정, 집시법 개정, 의료보험 확대 등 굵직한 성과를 낳은 것으로 평가받는다. 13대 국회가 이렇게 생산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허주 김윤환 원내총무를 비롯해 야 3당 파트너인 김원기(평민당)·최형우(통일민주당)·김용채(신민주공화당) 총무 여·야 지도부가 정치적 난제 속에서도 ‘협상의 미학’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지금 같으면 극심한 여·야 갈등으로 비화될 정치적 사안들도 당시 여·야 원내대표들은 지혜롭게 존중과 양보와 타협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함으로써 풍전등화(風前燈火)같았던 국회를 정상화 시켜 나갔다.

원내대표의 위상과 권한은 13대 국회 때보다 더욱 높아졌지만 대야(對野) 소통과 협치(協治)를 하겠다고 목소리만 높일 뿐 자기 정치를 하거나 상대 당(黨)을 정상적 협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협상은 상대를 근본적으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데서 시작된다.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는 야당의 요구를 경청하여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면서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협상의 묘수(妙手)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신임 원내대표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자유한국당이 국회에 복귀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드는 통 큰 양보 정신이 필요하다. 따져보면 지금 꼬인 정국의 원인 제공은 집권여당이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제1야당을 무시하고 패스트트랙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신임 원내대표 역시 과거 야당 시절 야당이 장외투쟁에서 원내 복귀 명분 없이는 회군(回軍)이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원내 복귀 명분을 집권 여당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물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역시 보수세력 결집이라는 효능에 이끌려 투쟁적 장외 집회에만 에너지를 쏟고 국회의 경쟁 무대를 계속 외면해선 안 된다. 국회를 방치하고 밖으로만 도는 것을 유권자들이 언제까지 인내할지 잘 판단해야 할 것이다.

홍영표 원내대표에게 바통을 넘겨받은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새 원내대표는 13대 원내대표 선배들의 지혜로움을 거울로 삼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와 머리를 맞대 교착 정국(政局)을 타개할 실마리를 하루속히 찾아 국회를 정상화 시켜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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