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최영미 시인·포항대학교 간호학과 겸임교수

어버이는 아비와 어미가 합쳐진 말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어머니 날로 지칭했으나 어느 때부턴가 어버이날로 그 명칭이 바뀌었다. 그날을 지칭하는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겠냐만 그래도 그렇게 이름이 바뀌고 나니 뭔가 균형이 맞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 건 사실이다. 일 년 중 하루 그런 날이 있다는 건 참 다행한 일이다. 언제나 감사의 표시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야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잊어버리거나 무심하게 지나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어버이날이라는 이름으로 하루를 규정지어 놓았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우리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숨을 쉬면서도 공기에 대해 생각하거나 고마움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거의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가까이 있을수록 깊이 영향을 미칠수록 무심해지는 습성을 가졌다.

예전에는 어버이날이면 학교에서나 마을에서 부모님을 중심으로 하는 체육대회를 열곤 했다. 카네이션을 단 학부모들이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달리기를 하고 춤을 추고 윷놀이를 하고 하루종일 정말 한바탕 신나게 같이 노는 날이 어버이날이었다. 효성이 지극한 아이에게는 효행상을 주기도 하고 부모님들에게도 이런저런 구실을 만들어 선물 하나씩을 안게 해드리는 날이었다. 아이들에게 저들의 세상이 아니라 그날만큼은 부모님을 특별히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슴 뭉근하게 채워주곤 하던 날이었다. 그런 행사들이 사라진 요즈음, 어버이날은 여전히 남아있으나 축제 같은 분위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효도라는 건 별 게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한바탕 입이 찢어지도록 웃으면서 같이 노는 일일 뿐.

부모의 역할에 대한 변화가 오면서 그 의미도 퇴색해버렸고 급기야 그 근본까지 흔들려버렸다. 어버이날에도 요양원에는 홀로 누워있는 노인들이 있고 자식들은 부모를 만나러 가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질문해보면 전화 한 통 했다는 것으로 충분히 할 일은 했다는 반응이다. 그렇게 의식이 굳어진 학생에게 예전에는 어떠했다는 등의 말은 아무 의미도 가지지 못한다. 그렇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부모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식이다. 예로부터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로 부모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의식을 고취해 왔던 우리 민족이 아닌가. 그 말이 사라지고 의미는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 의식까지 사라진다면 우리 사회는 무엇을 근간으로 사회성을 형성하고 가족이라는 관계망을 형성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그나마 다행한 일은 이야기를 진행하고 끊임없이 질문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부모에 대해 안타까워하고 때때로 감사함을 느낀다는 확인을 한 일이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화하고 기계가 사람들을 대신하는 시대가 됐다. 외식하는 가족들의 테이블을 보면 대부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또한 문명의 폐해다. 가족들 간에 생길 사랑과 존경, 믿음 같은 것들이 고스란히 기계속으로 사라지고 있는 순간인 것이다.

햇살 좋은 오월, 경로당이나 양로원, 요양원 등에 있는 노인들을 모셔놓고 햇살 좋은 운동장에서 한바탕 윷놀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모다! 윷이다! 하는 사이 그들이 세월을 잊고 젊은 한때의 그 날로 돌아가 한바탕 입이 찢어지게 웃게라도 했으면 좋겠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여기 어떻게 있게 됐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부모님이 없었다면 나는 한 마리 나방으로나 이 눈부신 오월을 떠돌았을 수도 있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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