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이 흘러간 한 송이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 파촛잎에 후두기는 저녁 어스름// 창 열고 푸른 산과/ 마주 앉아라//들어도 싫지 않은 물소리기에/ 날마다 바라도 그리운 산아// 온 아침 나의 꿈을 스쳐간 구름/ 이 밤을 어디메서 쉬리라던고” 성긴 빗방울이 파초 잎에 후드득 내리는 어스름 저녁 풍경이 그려지는 조지훈의 시 ‘파초우’다.

이처럼 파초를 좋아하는 문인들이 있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파초의 잎은 보기만 해도 여름 한나절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청량감을 준다. 여기에 후드득 비라도 뿌리면 넓은 잎을 치는 빗방울 소리가 어떤 악기의 연주보다 더 아름답게 들린다.

옛날부터 즐겨 온 예술인들의 창가에 심어졌던 남국의 상징 파초와 비슷한 식물 가운데 바나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나나를 정원에 심으면 파초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은 과는 같지만 종이 다른 식물이다. 2년 전 더운 날씨에 포항의 한 교회 화단에 심어 놓은 바나나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이야깃거리였다.

그런데 포항시 북구 흥해읍 망천리의 한 농가는 아예 바나나 농장을 만들었다. 포항시농업기술센터가 지난 2017년 시설하우스를 지어 바나나 400포기를 심은 것이다. ‘포기’라고 하는 것은 바나나를 흔히 나무라고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파초 과의 여러해살이 풀이기 때문이다. 2017년 심은 바나나 포기들에서 탐스럽게 바나나 열매가 달렸다. 파초 같은 이파리만 봐 오던 바나나 나무에서 직접 바나나를 수확하는 체험 농장이 포항에 문을 열었다. 농장을 찾은 부모와 아이들이 탐스럽게 달린 바나나를 만져보고, 맛보는 농업의 6차산업 현장이 되고 있다.

바나나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상훈씨(41)는 전국에서 가장 일조량이 풍부한 포항이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 생산의 적격지라고 한다. 기후가 아열대화 되면서 열대 과일을 생산하는 농가들이 늘고 있다. 포항과 경주, 경산, 고령 등 경북은 물론 전국에서 바나나와 망고, 구아바, 얌빈 등 열대 과일과 커피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지구 온난화가 농업 환경도 바꾸고 있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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