칙간이라고 불렸던 재래식 변소를 다니다보면
가끔은 똥도 밟고 오줌도 밟고 구더기도 밟는다.
낮은 지붕 밑으로 잿간도 함께 붙어 있었는데
아버지가 좋은 거름 만들려고 똥오줌 뒤섞어놓은
잿더미에 빠지며 헤치며 엉금엉금 기어 넘으면
암탉이 낳은 뜨끈뜨끈한 계란이 숨어 있곤 하였는데
아버지 몰래 꺼내들고 뒤안으로 가 까먹는 재미는
오줌 냄새도 똥냄새도 구더기도 별 것이 아니었다.
외가댁에 가면 외할머니 늘상 꺼내주시던
천하의 보양재 날계란을 몰래 훔쳐 먹으며
나는 무럭무럭 자라 장닭 같은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오늘 재래식 변소 같은 세상을 거닐면서
똥도 밟고 오줌도 밟고 구더기도 밟긴 하지만
그것이 모조리 살이 되고 피가 되리라.
나도 그들에게 혹간은 똥도 되고 오줌도 되고
구더기도 되면서 보양재 챙겨 주리라.
똥도 아니고 오줌도 아니고 구더기도 아니면
어디 가서 뜨끈뜨끈한 날계란 훔쳐 먹으랴




<감상> 재래식 변소의 똥과 오줌은 거름이 되고, 그걸 먹고 자란 곡식이 나의 입으로 들어가니 음식과 똥은 하나가 된다. 농사짓는 사람은 똥을 귀하게 여기는데, 도시 사람들은 좌변기에서 똥과 철저히 분리되어 자신의 똥에게 미안해 한 적이 없다. 그들은 똥의 순환 원리를 모르므로 스스로 똥과 오줌과 구더기가 되어 남들에게 날계란 같은 보양재를 챙겨주지 못한다. 오히려 약한 자를 짓밟고 착취하는 더러운 세상을 만들 뿐이다. 자신의 똥마저 되돌아보지 않는 자들이여! 혼자 날계란 다 훔쳐 먹지 말고 나눠 먹자. 날계란도 구멍 한 개만 뚫고 먹으면 잘 넘어가지 않는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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