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옛 스승 "얘들아 편지 답장이 30년이나 걸려 미안하다"

김흥섭 전 포항 효자초 교장이 14일 자택에서 30년 전 ‘마지막 담임’ 당시 경주 흥무초 4학년 2반 학생들의 손편지 묶음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흥섭 전 포항 효자초 교장이 14일 자택에서 30년 전 ‘마지막 담임’ 당시 경주 흥무초 4학년 2반 학생들의 손편지 묶음을 들어보이고 있다.

백발이 된 여든의 옛 스승은 30년 전 마지막으로 담임을 하다 학기 도중 교감 승진으로 전근을 가 학생들과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못내 남았다.

학생들은 선생님과 이별을 아쉬워하며 ‘연락 주세요’라며 안부의 손편지를 전달했지만, 바쁘게만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서 30년이 지나도록 답장을 못 한 것이 미안했다.

뒤늦게 편지에 적혀있는 옛 전화번호와 주소를 수소문해도 오랜 시간이 지나 연락이 닿질 않자 신문을 통해 제자들의 안부를 묻고, 또 답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고자 한다.

이러한 사연의 주인공은 김흥섭(80)전 효자초(포항시 남구) 교장이다.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14일 포항시 북구 장성동 자택에서 만난 김 전 교장을 만났다.

교사생활 30년 차인 지난 1989년 경주 흥무초 4학년 2반 담임이던 그는 같은 해 9월 1일 자로 교감으로 승진하며 청송 지경초로 발령이 났다.

2반의 52명 학생들은 갑작스러운 선생님과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편지 주세요’,‘전화 주세요’,‘승진을 축하 드립니다’,‘엄하셨지만 저희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내용의 순수한 마음을 손편지로 전했다.

평소 학생들의 일기를 ‘마음의 거울’이라 생각하며 성심성의껏 코멘트를 달아 주고, 아이들의 동시와 글들을 문집으로 만들기를 즐겼던 그는 이 편지들을 철을 해 소중히 간직키로 했다.

문득문득 옛 제자들이 생각나고 답장을 할까도 했지만 이후 10년간의 교감과 5년 간 교장 생활 등 남은 공직을 충실히 마무리하고, 이후 10여 년간의 교통정리와 효 실천 강사 봉사활동에 열중해 살다 보니 30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김흥섭 씨가 30년전 마지막 담임 당시 경주 흥무초 4학년 2반 학생들이 보내준 석별의 편지를 읽고 있다.

그는 총 45년간 교직 기간 동안 학생들을 성실히 가르친 공로를 인정받아 황조근정훈장과 포항교육상, 향토봉공상을 받기도 했다.

김 전 교장의 교육철학은 ‘언행일치’. 그리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를 좌우명으로 삼고 제자들이 바른 생각과 바른 행동을 하길 항상 기원한다고 했다.

최근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옛 문집과 자료들을 정리하던 중 ‘마지막 담임’이라는 이름으로 된 편지 묶음 철을 다시 발견한 그는 ‘답장을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미안해 경주전화국에 학생들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김흥섭 씨가 30년전 마지막 담임 당시 학생들의 손편지에 답을 못한 미안함을 전하는 글.
김흥섭 씨가 30년전 마지막 담임 당시 학생들의 손편지에 답을 못한 미안함을 전하는 글.

이에 옛날 전화번호에 숫자 ‘7’만 더하면 된다고 해 10여 곳에 전화를 해봐도 오랜 세월 탓에 연락이 닿는 곳이 한 곳도 없었다.

김흥섭 전 교장은 “그때의 편지글을 읽으면서 ‘답장해 주세요’라는 사연을 실천 못해 마음이 걸리고 반성이 되고 있다”며 “지금은 40대 초반의 중년이 된 여러분의 앞날에 행운과 영광이 있기를 기원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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