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의 세종과 함께 조선시대 성군(聖君)으로 각인돼 있는 정조는 학자풍의 개혁군주였다. 정조가 학자적 기질을 정치에 유감 없이 발휘한 것은 그의 ‘어찰정치’로 잘 드러난다.

정조는 당시 붕당의 핵심인사들에게 비밀편지를 주고받으며 막힌 정국을 풀어나갔다. ‘공작정치’라 폄하 하기도 하지만 왕조시대에 정조가 신하들과 소통하고 정국을 풀어 나가려 했던 노력은 특별한 것이었다.

정조의 소통정치 노력은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노론 벽파 우두머리 심환지를 회유한 편지글에서 잘 나타난다. 정조는 심환지 한 사람에게 무려 350여 통의 비밀편지를 보냈을 정도다. 정조는 주요 대신들과 비공식적으로 정국 현안을 논의하는 사적인 편지를 주고받았다. 국왕과 신료가 논의를 진행하는 공식 절차가 있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막힌 정국을 풀어나간 것이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어제 만났을 때는 사람이 많고 번잡했기에 이렇게 편지를 보낸다”고 쓴 것처럼 정조는 공개적인 논의와는 별도로 편지를 사적 통로로 삼아 대신들과 은밀한 대화를 나눴다. 정조는 특정 신하와 편지를 교환해 공식적인 절차와 아울러서 국정을 장악하고 정보를 신속하게 얻는 방안으로 활용했다.

정조는 “신하를 공식적인 관계 밖에서 가족 같은 사사로운 관계로 친밀하게 대우해야 한다”고까지 했다. 정조는 이처럼 신하들과 ‘비밀편지’라는 특별한 소통방식으로 문화정치를 구사해 조선 후기의 문예부흥을 이끈 성군이 됐다.

청와대가 막힌 정국을 풀기 위해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의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선거법 등에 대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과 관련해 대통령과 여당의 사과를 요구하며 민생투어를 벌이고 있다. 5당 대표들과 함께 만나겠다는 청와대 측과 일대일로 만나자는 한국당의 주장이 평행선이다.

이 같이 꼬인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왕조시대에도 맞서는 신하를 달래기 위해 왕이 밤새 편지를 써서 소통했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1대 1이든 1대 4든 못 만날 이유가 없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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