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포항시가 ‘시민들의 행복한 삶을 응원하는 철학문화도시, 포항’을 기치로 내걸고 법정문화도시 지정 예비도시로 선정된 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예비도시 선정 이후 일 년 동안의 예비사업 추진 결과를 바탕으로 공식 지정 여부가 판가름 날 계획인 걸 감안하면 벌써 주어진 시간 중 삼 분의 일이 지난 셈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 지자체는 올 연말쯤에 이루어질 법정문화도시지정을 위해 어떤 준비 작업을 하고 있는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지난 1월 같은 지면 칼럼을 통해서도 밝혔듯이, 우리 시가 법정문화도시로 지정된다면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지원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인 도시로서의 이미지 제고는 물론, 산업인프라 건설 없이도 도시성장의 새로운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또한, 막대한 지진피해로 인한 물질적,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의 특수한 상황 또한, 어느 정도 타개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4개월 동안을 가만히 돌이켜보면 문화도시 지정을 위한 딱히 이렇다 할 예비사업 추진은 물론, 계획수립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지난 3월 포항지진이 인재(人災)인 것으로 공식 발표된 이후 모든 행정이 지진피해 국가배상과 복구지원 문제에만 집중된 것 같은 분위기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폐철도부지 숲길조성 사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해병대문화제’나 ‘길거리예술축제’ 등이 열렸는가 하면, ‘국제불빛축제’가 개최 시기를 바꿔 이달 말 열릴 예정이고 보면 아무 일도 없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기존에 해왔던 사업 내지는 행사들일 뿐, 새로운 예비사업 추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해 말 예비도시 선정 이후 포항시는 ‘스틸문화의 가치 확산을 통한 스틸라이프 문화도시 지향, 그리고 문화도시 시민포럼, 도시문화학교, 시민펀딩 등을 통한 시민의 문화적 성장 도모’ 등을 세부계획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다. 이대로 가다간 문화도시의 꿈을 접어야 할지도 모를 판이다.

우리나라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르면 지역문화란 ‘지방자치단체 행정구역 또는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을 말한다’고 정의돼 있다. 그리고 문화도시란 ‘문화예술·문화산업·관광·전통·역사·영상 등 지역별 특색 있는 문화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문화 창조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동법 제15조에 따라 지정된 도시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간추려 말하면, 공통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문화 창조력이 강화되는 도시가 문화도시란 얘기다. 그러니 문화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역사적·문화적 정체성 확립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지역역사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흔히들 박물관이라고 하면 단순히 유물전시나 기록물 보관 장소 정도로 생각하고 그저 둘러보는 식의 관람을 위한 공간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박물관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편협한 시각에 지나지 않는다. 지역박물관은 그 지역과의 관계에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된 기억을 향유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삶의 흔적들인 유물과 기록물을 통해 그 지역만의 고유한 전통과 관습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동체 구성에 필수불가결한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역박물관이다. 따라서 박물관은 그곳을 찾는 지역주민들에게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소통의 장일 수가 있고, 외부 방문객들에게는 그 지역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홍보 공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복합문화공간으로서 박물관이 문화행정의 주체로 부각되는 이유도 이런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어느덧 시 승격 70주년을 맞고, 내년이면 문화도시를 꿈꾸는 경북 제1의 도시 포항에 지역역사박물관 하나쯤은 진즉에 있었어야 당연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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