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이원익과 홍남기
[삼촌설] 이원익과 홍남기
  • 설정수 언론인
  • 승인 2019년 05월 20일 17시 4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5월 21일 화요일
  • 18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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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은 청렴하고 지조가 있어 자신을 지키고 성심을 다해 나라를 걱정했는데 이제 전하께서 홍여순 등의 상소를 좇아 어진 이를 끝까지 쓰지 못하고 착한 무리를 유성룡의 당이라 하여 멀리하고 배척하시니 신은 사림의 화가 이를 좇아서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영의정 이원익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다.

조선 중기는 안팎으로 정세가 급변하는 격동의 시대였다. 특히 선조 광해군 인조에 이르는 시기는 붕당정치의 시작과 왜구, 여진족의 침입, 인조반정 등 정변으로 나라가 극히 혼란스러웠다. 이때 세 명의 왕 모두가 영의정으로 발탁한 인물이 이원익이다. 이원익은 남인 소속의 정치인이었지만 나라가 어지러울 때 중심을 잡고 당쟁의 격랑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소신의 정치를 펼치면서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조정에 붕당의 조짐이 30년 전에 일어났는데 근래에는 그 풍습이 더욱 고질이 돼 인물의 현부(賢否)를 분별하지 않고 자기 당이면 취하고, 그렇지 않으면 버리며 논의의 시비를 따지지 않고 자기 당이면 가하다 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가하다 하므로 국사를 어찌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뜨리니 이를 생각하면 진실로 통탄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패거리 정치의 폐단에 대해 광해군에게 올린 이원익의 직언이다.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폐모 하고자 했을 때 “어머님에게 효성을 다하라”는 상소를 올려 유배를 당했다. 인조반정 후 유배에서 풀려나 영의정이 된 이원익은 조정의 실세인 반정공신들이 광해군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원익은 반대했다. 한 때 임금으로 섬겼던 사람을 죽인다면 자신도 인조 밑에서 벼슬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전쟁으로 피폐된 백성의 어려움을 살펴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 방납의 폐단을 없애고,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줄 것을 왕에게 주청, 대동법 실시를 줄기차게 주장했다. 이처럼 소신정치로 자신을 부각 시키면서도 세 임금을 보필, 후세까지 명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아싸(아웃사이드) 논란에 휩싸인 재정경제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를 보면 소신껏 정승 몫을 다한 이원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주요 정책 결정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홍 부총리가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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