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부모가 되면 어쩔 수 없이 ‘가르치는 자’가 됩니다. 시중에서 회자되는 가정에서의 세 가지 자녀교육법을 소개합니다. 황제나비형, 줄탁동시형, 연꽃씨형이 그것입니다. 광주교대 박남기 교수의 교육칼럼(최고의 교수법)에서 많은 것을 빌려왔음을 미리 밝힙니다.

황제나비형 교육방법은 매사 혼자 익히고 깨치도록 자녀를 방목, 방치하는 교육방법입니다. 백련자득(百鍊自得), 자력갱생(自力更生)이 모토가 됩니다. 황제나비가 제 고치를 스스로 벗고 나오는 힘으로 수천km를 날아가는 엄청난 비상의 능력을 가지게 된다는 자연의 이치를 답습, 확장한 교육방법입니다. 만약 성공만 할 수 있다면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자녀교육법입니다. 부모는 항상 자기 수준 안에서 자녀를 도울 수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도 그렇고 정신적인 것도 그렇습니다. 물질은 풍부한데 정신이 그렇지 못할 때는 물질만 도와주는 게 맞습니다. 앞뒤 안 가리고 자식을 내 품 안에서, 내 방식대로 키우겠다는 것은 결국 자식을 내 한계 안에서 키우겠다는 것입니다. 황제나비형은 부모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교육법입니다.

줄탁동시(?啄同時), 혹은 줄탁동기(?啄同機)라는 말은 교육(사범)대학에서 많이 쓰는 말입니다. 알 속의 새끼(학생의 노력)와 알 밖의 어미(교사의 도움)가 제때제때 서로 안팎에서 호응할 때 교육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뜻입니다. 보통의 부모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자녀와 부모의 관계가 바로 이 ‘줄탁동시’입니다만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도 합니다. 이 생각 자체가 교사나 부모의 입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입니다. 알에서 아직 바깥세상으로 나오지 못한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에게는 ‘줄탁동시’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저 본능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줄탁동시’는 과도한 기대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밖에서 쪼아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어미들은 늘 고통스럽습니다. 교육 대상인 아이들은 이미 생물학적으로 ‘태어난 상태’입니다. 그들이 또 하나의 탄생, ‘사회적 탄생’을 위해 고통스럽게 ‘알을 깨고 나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가르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것을 몸으로 가르쳐 주어야 하는 이가 바로 부모와 교사입니다. ‘줄탁동시’는 오직 솔선수범을 전제로 할 때만 하나의 온전한 교육법이 될 수 있습니다.

연꽃 씨는 수백 년을 견디는 견고한 껍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껍질을 열어서 발아를 도와주는 외부의 손길이 연꽃 씨에게는 큰 도움이 됩니다. 부모가 선제적으로, 자기 아이를 기획 교육하는 교육방법을 그래서 ‘연꽃씨형’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단 이 경우는 아이의 타고난 자질을 확실하게 파악한 연후에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부모 자신도 자신의 능력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제 자식의 능력을 정확하게 가늠하고 자기 자신이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안다면 이 교육방법은 최선의 교육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최악의 교육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연구논문에 제 자식을 공동 저자로 올린 몰지각한 교수들의 이야기가 최근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자신들은 연꽃씨형 교육법이라고 강변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들이야말로 최악의 부모들입니다. 자식에게나 세상에게나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한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언젠가 한 ‘어머니 교실’에서 어머니의 역할을 맹모형, 석봉모형, 율곡모형으로 나누어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신사임당이 율곡을 가르친 방법이 연꽃씨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크게 보면 황제나비형은 ‘맹모삼천’(孟母三遷·맹자의 어머니가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 이사를 함)과 유사하고, 줄탁동시형은 석봉의 어머니가 취한 교육방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세 어머니의 위대한 공통점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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