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10주기'에 되돌아보는 지역주의 타파
'노무현 10주기'에 되돌아보는 지역주의 타파
  • 연합
  • 승인 2019년 05월 21일 18시 16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5월 22일 수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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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올해로 10년이다. 국민 참여 정치와 탈권위주의, 전향적인 남북관계 정립 등 ‘정치인 노무현’의 여러 공과는 보는 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역주의에 정면으로 맞선 정치인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에 정치적 명운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는 ‘꽃길’을 버리고 스스로 정치적 험로를 택했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이면서 당선 안정권에 있던 서울 종로구를 박차고 나가 ‘지역주의 타파’를 소리 높이 외치며 부산 북강서을을 선거구로 택했다. ‘호남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던 새천년민주당의 후보가 영남의 중심인 부산에 출마한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여론조사와 선거 초반 우위에도 불구하고 노 후보는 지역감정에 기댄 상대 후보에게 17.5%포인트라는 큰 표차로 패하고 말았다. 지역주의 타파를 선거 구호로 삼은 후보가 결국 지역주의에 무너진 것이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식 무모한 도전으로 그때 얻은 별명이 ‘바보 노무현’이었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는 짧은 시일 내에 뿌리가 깊어진 고질병이다. 1971년 제7대 대선에서 호남 출신인 신민당 김대중 후보는 부산에서 40%가 넘는 득표율을 올렸다. 경남·북에서도 득표율이 20%를 웃돌았다. ‘영남 후보’인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 역시 호남지역 득표율이 30%가 넘었다. 16년이 지나 1987년에 치러진 제13대 대선은 양상이 달라진다. 각 후보가 자신의 출신 지역을 기반으로 결집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는 호남에서 90%가 넘는 몰표를 얻었다. 반면 영남에서는 득표율이 2%를 갓 넘었다. 영남 출신인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는 역으로 호남에서 득표율이 한 자릿수에 그쳤다. 13대 대선에서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주된 책임은 정치인에 있다. 출신 지역을 안정적인 표밭으로 가꾸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겼고, 이에 반발하는 지역은 그들끼리 결집하는 양상이 선거 때마다 되풀이됐다. 인물이나 정책 대결보다는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선거 전략이 반복되다 보니 특정 지역은 특정 정당의 ‘텃밭’으로 변하고 말았다. ‘3김 시대’가 종언을 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역주의는 근본적인 치유가 어려울 정도의 사회적 병리 현상으로 자리 잡게 됐다.

‘바보 노무현’의 도전은 헛되지 않았다. 콘크리트처럼 단단하게 보이던 지역주의에 균열을 냈다.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부산에서 처음으로 당선됐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2명으로 늘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부산의 지역구 의원 18명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소속이 5명으로 크게 불어났다. 노 전 대통령이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전북 전주시을 선거구에서는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해 호남지역의 민주당 독점 구도를 깨자”고 목소리를 높인 새누리당 소속 정운천 후보가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지역주의의 색채만 엷어졌을 뿐이다.

지역주의 망령은 여전히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퇴행적 정치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 망령을 불러들여 유권자들의 눈을 흐린다. 내년 4월 15일 치러질 제21대 총선은 이제 11개월도 남지 않았다. 다가올 총선에서는 지역주의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유권자들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 정치인들도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선거제 개혁에 여야 가릴 것 없이 합심해야 한다. 지역주의 타파는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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