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명문 출신인 육손은 여몽의 천거로 형주전선 사령관이 됐다. 맥성에서 관우를 무찌르고 관우 부자를 사로잡아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유비가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오나라를 쳐들어오자 손권은 기겁을 해 쓰러졌다. 이때 감택이 손권에게 건의했다.

“지금 우리에겐 하늘을 떠받들만한 기둥감과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그를 만나보십시오. 그가 바로 육손입니다.” 감택의 강력한 천거로 오나라 총사령관이 된 육손은 이릉에서 유비의 대군을 맞아 철통 같은 수비로 지구전을 폈다. 적이 지칠 때까지 기다려 공격하는 ‘이일대로(以逸待勞)’의 전략이었다. 그렇게 반년을 대치한 끝에 화공으로 유비의 20만 대군을 섬멸, 대승을 거뒀다.

오나라 군의 4배나 되는 유비군을 격퇴한 육손의 승전 비결은 전투 현장의 확인이었다. 육손은 그저 책상머리에 앉아 보고만 받는 지휘관이 아니었다. 모든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분주하게 현장을 뛰어다녔다.

우리 정치에서도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소통을 통해 정치적 성공을 거둔 사례가 더러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수시로 온갖 공사현장을 찾아가서 현지 지도를 펼쳤다. 수출은 국력의 총화적 표현이라며 재임기간 152차례 열린 수출진흥대회 가운데 147차례를 직접 주재, 무역정책을 진두지휘하며 결국 수출 1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전날 정몽준이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자 정몽준의 집을 직접 찾아갔다. 서민의 아들이 재벌의 아들 집 앞에서 문전박대 당해 서성이는 모습이 TV에 생중계됐다. 노 후보의 안타까운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진 시민들의 분노와 안타까움은 그대로 표로 이어졌다. 정몽준 집 현장을 찾아간 것이 대통령 당선에 큰 몫을 했다.

대통령이 된 뒤 검찰 개혁이 가로막히자 평검사들과 맞장토론을 벌였다. ‘평검사와의 대화’라는 전례 없는 시도를 TV에 생중계하도록 했다. 대통령은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들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용비어천가로 분칠한 자화자찬의 왜곡된 보고에만 의존하지 않고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대통령이 지켜야 할 수칙(守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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