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석 경북포럼 위원·정치학 박사
윤종석 경북포럼 위원·정치학 박사

‘의리’란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다. 고교 사이의 선후배 관계의 부질없는 의리 때문에 한 사람은 간첩행위로 또 한 사람은 외교상 기밀누설과 수집 혐의로 중벌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 문제와 관련된 한·미 정상의 통화 내용을 한국당 비례대표 강효상 의원이 국익 차원이라는 변명으로 유출하여 파문이 커지고 있다.

당장 여당과 외교부는 우리 국가의 외교 근본 자체를 흔드는 중대한 국기문란으로 규정하여 관련자를 엄벌에 처하겠다고 한다. 당사자는 국익 차원이며, 소속정당의 입장은 정당한 의정활동이라고 두둔하고 있지만 일반적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이다. 친구 간에도 지켜야 할 비밀과 넘지 말아야 될 금도가 있는데, 하물며 국가와 국가 간의 외교 차원에서 기밀을 폭로하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엄격한 범죄행위이다. 오죽하면 이념을 같이하는 보수인사까지 나서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의 공개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상종하지 말아야 할 국가로 만드는 행위로서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라고 말했을까.

오로지 자신의 영달과 정당의 이익을 위해서, 그리고 국익은 아랑곳없이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서라면 법과 원칙은 무시하고서라도 일단 터트리는 무지함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작년 9월 떠들썩했던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의 같은 당 심재철 의원실의 국가 재정정보 무단 유출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다. 결국 국익과는 상관없이 의정활동이라는 명분은 빅 이슈 한방의 노이즈마케팅이며,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많다는 선출직의 독특한 행동으로 최종의 목적은 내년 총선에 있다.

권위주의 시절 의회활동을 통한 문제의 해결이 여의치 않을 때 국민들을 상대로 집회를 열거나 서명운동을 펼친 것이 장외투쟁이다. 그러나 공당의 두 대표가 적극 가담하여 여론전을 펼치며 호도하는 장외투쟁은 대의도 명분도 없는 소모전과 같다. 독재의 화신이라고 정부를 적극 비판하고, 누구든 거침없이 정부와 대통령을 욕할 수 있는 시대, 여론의 추이를 수시로 조사하여 정부운영에 반영하는 지금이 독재라고 한다면, 과거 밤새 안녕하며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막던 그 시절이 진정한 민주주의였을까. 스스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수많은 언론의 정치기사와 칼럼을 통해 접하는 주장들이 독자로부터 공감하며 호응을 받는 것이 보이지 않는 민주주의의 실현이며, 그 혜택은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분위기에서 글을 쓰는 필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 미국 대통령을 내방해 달라는 요청전화가 굴욕외교이며 독재의 화신이라고 비판한다면, 과거, 국가의 이익과는 아랑곳없이 선거지지율을 위해 휴전선 근방의 무력시위를 요청한 그때의 집권당 외교는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내 가족안전과 내 집안 살림을 살리기 위해서는 범법을 제외하고 무슨 일이든 해야 하는 것이 가장의 책임이다.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내 식구를 보호하지 못하고 굶기는 어리석은 짓이 굴욕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비교하기 어렵지만 일본 ‘아베‘수상의 지나칠 정도의 ‘트럼프’대통령 모시기가 화재가 되고 있다. 얼마 전 트럼프와 골프를 치면서 급하게 따라가다 벙커에 빠지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따지고 보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이다. 그것이 외교이다.

내 집안싸움이 국제 뉴스로 도배되는 지금, 정쟁을 넘어 국익을 위해서라면 굴욕외교이든 뭐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신의 영달과 안녕을 추구하는 돌출적 정치인의 소탐대실로 인해 정치가 혐오의 대상이 된 지는 오래, 무책임한 정치인의 반성 없는 행동이 국익을 해치고 외교를 힘들게 만든다. 따라서 재발방지를 위한 법과 원칙의 기준이 엄격히 필요할 때이다. 친구 간에나 국가 간에나 지켜야 할 진정한 의리는 신뢰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의리는 한미관계의 공조를 해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 지금 무엇이 국익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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