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부터 떠부제, 에베레스트, 로체, 아마다브람

이틀간 걸어서 남체마을(3,440m)에 도착했다. 남체는 EBC트레킹 길에서 가장 큰 마을로 바자르가 있고, 트레킹 중 국제전화와 인터넷도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바자르라고 하지만 2m정도 폭의 길 양쪽으로 판잣집 가게가 십여 채 있는 게 전부다. 이곳에서 미처 준비해오지 못한 등산 장비나 일용품을 살 수 있다.

트레킹 중 12일 밤을 롯지에서 자고 먹는데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판자집의 나무침대다. 걷는 어려움보다 밤중의 추위가 더 견디기 어렵다.

가장 경제적으로 여행 하려면 한끼 식사와 하룻밤 자는데 각각 2~3천원이면 해결되니, 하루 1만원이면 먹고 자고 지낼 수 있다.

남체에서 고소적응을 위해 하루 더 머문다. 하루 쉬는 동안 오전에 가파른 오르막을 1시간 여 올라 샹보체 언덕에 올랐다. 이곳에서부터 에베레스트 산군이 선명하게 보이고 3,700m 정상에는 5년전 까지 1년동안 운항한 경비행장 활주로가 있다. 남체 공항을 이용하면 에베레스트 등산객들이 2~3일을 단축할 수 있지만, 장사가 안된다는 주변마을 사람들의 항의와 위험요소가 너무 많은 항로가 패쇄되었다.

남체 롯지에서 이틀밤을 지내고 남체 바자르를 출발, 텡보체(3,860m)마을까지 왔다. 텡보체는 능선위에 위치하여 저 멀리 에베레스트가 보이고 언덕 위에 위치한 불교사원은 얼마전 KBS 차마고도에 방영된 적이 있는 사원이다. 어두컴컴한 법당 안에 8명의 수도승이 북과 나팔소리에 맞추어 법문을 외우면서 정진하고 있었다.

남체 바자르

고도 4,000m를 넘으니 식물이라곤 땅에 착 달라붙은 향나무만 드문드문 눈에 띄일뿐이다. 딩보체(4,410m)마을로 가는 황량하고 넓은 개활지에 2005년 푸모리봉(7,156m) 등정 후 산속에 잠든 정상균, 김도양 두 젊은이를 기리는 추모탑이 외로이 서 있었다.

트레킹 5일째, 딩보체 마을에 도착하여 이틀을 체류하면서 피로도 회복하고 고소 적응도 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었다. 일정대로 마을 앞 동산에 위치한 마칼루(8,463m, 세계 6위봉)뷰 언덕에 올랐다가 이웃 마을인 페리체에서 밤을 맞았다. 아침이 되자 로부체(4,950m)로 올랐던 젊은이가 고산병에 걸려 다시 내려왔다. 구토와 팔·다리에 힘이 빠지고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은 증세란다. 일단 고산병에 걸리면 내려오는 길 밖에는 약이 없단다. 페리체마을 입구에 은빛의 원뿔 모양으로 만든 추모비가 마을의 수호신인양 묵묵히 서있다. 제작년에 네팔 정부에서 제작한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조난으로 숨진 세계 각국 등반가들의 이름과 조난 장소와 날짜가 새겨져 있는 Everest Memorial이다. '산에 왜 오르는가?'만년설에 젊음을 묻은 그들의 삶에 대해 잠시 묵상하면서, 숙연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짚어보니 모두 202명에 한국인이 7명이었다.

텡보체 사원(3,860m)

트레킹 7일째, 해발 4,500m를 넘으니 식물이라곤 없다. 시커먼 맨 땅에 황량하게 뒹굴고 있는 돌무더기 사이를 천천히 숨을 헐떡이면서 올라가느데, 아마다브람 봉은 이제 뒤로 보이고 푸모리 봉이 점점 앞으로 다가왔다. 트레킹 기간 중 2시간 이상 계속되는 가파른 오르막이 3군데 있는데 이곳이 마지막 오르막이다. 오르막이 거의 끝나는 능선 위에 히말라야를 오르다 유명을 달리한 세르파들의 돌무덤이 있고, 저 만큼 앞에 해발 4,950m 로부체 마을이 보였다.

트레킹 8일째, 새벽에 기상하여 6시에 최종 목적지를 향해 올랐다. 로부체에서 고락셉(5,140m)마을 까지는 최종코스로 고소에 적응 하면서 4~5시간 걸려 오르게 되어있는 코스를 3시간만에 주파하였다. 주위는 식물이라곤 전혀 없고 돌무더기사이를 길이라고 생각 되는대로 한발한발 전진한다.

고락셉 롯지가 사람이 사는 가장 높은곳이다. 잠깐 숨을 돌린 후, 바로 칼라파타르(검은바위라는 뜻)로 올랐다. 눈보라가 치고 깍아 지른 오르막이었지만 2시간 30여분만에 우뚝 솟은 검은 바위가 나타났다. 이곳이 해발 5,550m다.

에베레스트를 정면에서 우러러보는 칼라파트라 언덕에서 내려다 보니 빙하와 암벽투성으로, 낭떠리지 밑에 EBC와 아이스폴이 선명하다. 앞으로는 푸모리(7,156m), 눕체(7,855m)가 우뚝 솟았고 뒤로는 아마다브람(6,812m)이 우리들의 수호신인양 포근히 감싸주고 있었다. 고산 준령이 손에 잡힐 듯 은은한 눈빛에 감싸여 지척에 있고, 저만치 에베레스트 정상이 선명히 모습을 드러내었다가 이내 구름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태고의 신비에 경탄하다가 롯지로 돌아와 뜨거운 차로 잠시 몸을 녹인 후 바로 EBC(5,364m)로 향했다. EBC 가는 길도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길로 간간히 에베레스트가 구름사이로 모습을 나타냈다. 태고의 신비, 황량하고 정돈되지 않은 태고의 혼돈 그대로다. 최종 롯지에서 왕복 소요시간은 칼라파트라가 4시간, EBC가 6시간이다. 칼라파타르를 목표로 올라온 23명 중 14명만이 고소증세를 이겨내고 5,550m까지 올랐다.

8일간 눈 속의 산악을 헤메어 세계 최고봉 바로 앞까지 왔다. 에베레스트를 목표로 하는 등반대와 트레카들이 주로 이용해서 '에베레스트 가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험한 길을 따라오면서 독특하면서도 순박한 풍습을 지닌 산악민족 세르파의 생활상도 접해보고, 롯지에서 현지인들과 서투른 영어로 일상의 대화를 나누면서 혹독한 환경속에서도 은은한 즐거움속에 살아가는 그들의 내면도 읽을 수 있었다.

고도 2,840m에서 5,550m까지 거의 2배를 오르기 위해 8일간 쉼 없이 왔다. 쭉쭉 뻗은 사철나무에서부터 땅에 착 달라붙은 식물들을 보면서 그들의 생명력과 히말라야 사람들의 생명력도 비교해 보고, 밤마다 머리 위에서 바로 비치는 초롱초롱한 별빛들을 눈에 넣어도 보았다. 이제 내려가야 한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여정도 이와 흡사하다는 느낌이 마음속 깊이 와 닿아, 지나온 여정에 대한 뿌듯한 자부심도 생기지만, 더욱 겸손해진 내 자신을 관조하면서 출발지까지 되돌아오니 모든 것이 제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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