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면 모포리 뇌성산 '뇌록 주산지'로 천연기념물 제547호 지정
기본 바탕색인 뇌록, 산업 근대화 시발점이었던 포항과 닮아

천연 전통안료 ‘뇌록(磊綠)’ 경북일보 DB

도시는 저마다 고유의 빛깔을 갖고 있다. 그 지역 자연의 빛깔이 그 도시의 풍광이다. 빛과 바람이 도시를 감싸고 거기에 인간들이 모여들면서 도시가 생겨났다.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도시의 빛깔을 좋아해서 터전을 이뤘을 것이다.

‘빛깔’과 ‘인간’의 만남이 도시이다.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으로 다가왔다. 쫓기듯 바쁜 일상에서 잃어 버렸다. ‘빛깔’을 잃어버린 인간과 도시는 생명을 가지지 못한다.

조그마한 어촌에서, 항구로, 제철 산업도시로 변화해온 포항의 색은 무언인가 언제부터 웅장한 제철소가 들어서면서 포항은 점차 고유의 색을 잃어갔다. 마치 예전부터 거무튀튀한 철의 빛깔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정도까지 도달했다.

그러면 포항 고유의 색은 무엇인가. 포항은 예전부터 깊고 푸른 바다와 함께였다. 저 멀리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끊임없이 파도가 포말로 밀려왔다. 명사십리 보석같이 반짝이는 모래밭에서 해당화는 그 파도를 보면서 꽃을 피웠다.

그 곳에서 소년들은 꿈을 키웠고, 연인은 사랑을 약속했다. 어부는 생의 의지를 불태웠고, 근로자는 청춘을 보냈다. 누구에게는 생의 터전이고, 누군가에겐 낭만과 동경의 대상이다.

바다는 그리움이다, 바다와 마주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그리움의 빛깔은 무엇인가. 아마도 깊고도 푸른 바다 빛일 것이다. 그러면 포항의 색은 바다여야 한다. 무한한 동경과 낭만과 꿈을 심어주는 바다가 포항이다.

포항은 회색빛 건물과 철의 빛깔이 도시를 점령한 듯해도 동해의 깊고 푸른 파도는 예전과 다름없다. 여전히 쉼 없이 밀려오고 간다. 삶에 지친 인간들에게 휴식과 낭만과 꿈을 심어주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바다는 원시 태초의 세계이다. 모든 것의 시작이다. 그래서 근본이다. 그 바다의 색을 닮은 것이 포항에서 유일하게 생산된다.

뇌록(磊綠)이다. 포항시 장기면 모포리 뇌성산이 뇌록의 주산지이다. 뇌록의 푸른색은 깊고 푸른 오염되지 않는 바다의 색이다.

천연기념물 제547호 ‘뇌성산 뇌록산지’는 궁궐과 사찰 단청에 쓰이는 우리의 전통 초록색이다.

“공사의 단청에는 바탕색으로 칠하는 암녹색의 ‘뇌록(磊綠)’을 3000㎏ 사용했고, 기둥에 칠한 산화철이 많이 포함된 붉은빛 흙 석간주(石間硃)를 300㎏ 사용했다. 공사에는 단청기능공 연인원 6천명이 투입됐다.” 1973년 6월, 4년여의 공사 끝에 공사를 마무리한 불국사 복원 경과보고서의 내용이다.

불국사 복원 공사에 뇌록이 3t이나 사용됐다는 기록이다. 우리나라 단청의 바탕색은 녹색 계통은 뇌록, 붉은색 계통은 석간주를 사용한다. 단청을 하는 주목적은 건물에 사용한 목재를 보호해서 건물의 수명을 오래가게 하는 것과 건물에 위엄과 신비감,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서다. 단청의 종류에는 가칠(假漆)단청, 모루단청, 긋기 모루단청, 금(錦)단청, 금모루 단청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단순히 뇌록이나 석간주를 칠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을 가칠단청이라 한다.

뇌록은 단청할 때 애벌로 기본 바탕색을 칠하는데 사용하는 매우 중요한 석채원료다. 이 귀중한 재료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포항시 남구 장기면의 뇌성산 일대에서 난다.

뇌성산은 조선시대부터 국가에 공납(貢納)한 뇌록 광산이었다. 뇌록은 광물질이기 때문에 아교 10%와 섞어서 사용한다. 뇌록은 목재의 표면을 보호하는 코팅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썩는 것을 방지한다. 바탕색으로 칠하면 다른 색상과 착색력도 우수하다.

뇌록에는 헥사클로로벤젠 성분이 있어서 방충과 살충작용을 하고, 곰팡이를 살균함으로써 방부제 기능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뇌록과 현대 화학안료를 비교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내구성, 내화성, 내공해성, 내열성(발화점) 등이 모두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뇌록으로 칠한 옛 단청과 벽화가 수 백 년이 지나도 색이 잘 변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의 기본 바탕색인 뇌록은 포항과 닮았다.

포항 동해가 한반도의 근원이고, 포스코와 포항철강공단의 철이 산업 근대화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근본을 배척하고는 현재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불변의 진리이다.

국내산 천연안료로 녹색은 포항 뇌성산 뇌록산지, 노랑과 회색은 충북 보은, 붉은색은 전남 강진, 흰색은 전남 신안 자연산 조개에서 채취한다.

포항이 한국의 전통 색인 뇌록을 하루빨리 되찾아 대한민국의 근본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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