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막바지의 꽃 넝쿨장미가
혈맹으로 뭉쳐 치렁거리는 언덕길 내려가다가
문득 그대 없는 세상에 십년 하고도 오년을
그림자 끌며 흘러왔다는 생각에
갑자기 그쪽 형편은 어떠냐고 묻고 싶다
그대는 아직도 이 골목의 시인이니
새로 쓴 시가 궁금하고
나는 물구나무 세운 그늘 속이었음을
활짝 핀 꽃송이들로 오늘따라 쓸쓸해진다
젊음은 소란스럽지, 예전처럼 늙어서
노회한 시의 가슴을 더듬을 때
만져지는 것은 몰라보게 겹진 주름들,
저 불꽃장미 또한 지상의 꽃이니
며칠만 타올랐다 스러지는 것을
나는 여한 없이 바라본다, 저버린
약속이 없었음을 시간을 일러주리라
며칠 내 물음처럼 맴돌던
언덕 위 아카시아 향기도 어느새 지워졌다
낙화의 티끌로 오는 신생이란
이렇게 얼룩지는 후일담이라는 것을,




<감상> 아름다운 꽃이 피면 이끌리게 하듯, 안부 묻고 싶은 그대는 나를 끌어당긴다. 그대에게 끌리는 것은 나름대로 좋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넝쿨 장미로 피어나는 존재였다면, 나는 그 아래 그늘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가 쓴 시가 궁금해지고 부재(不在)하는 그대로 인해 내 마음이 쓸쓸해진다. 꽃이 타 올랐다가 스러지듯, 아카시아 향기가 지워지듯, 그대와의 약속은 저버린 적이 없다. 이런 인연조차도 얼룩지는 후일담(後日譚)으로만 남아 있을 뿐, 낙화의 티끌로 남아 후생까지 이어질라나.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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