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핵연료는 원자로에서 핵분열을 일으켜 열을 발생, 전력을 생산한다. 이때 사용된 핵연료는 일정 기간 원자로 안에서 타면 충분한 열을 생산하지 못해 새로운 연료로 교체해야 한다. 이때 나온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은 일정 기간 동안은 높은 열과 방사능을 배출하기 때문에 밀폐공간에서 특별관리해야 한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보다 훨씬 관리가 까다롭고 위험한 물질이다. 그런데 이처럼 위험한 사용후핵연료의 처리 대책을 원전 가동 40여 년이 지나도록 세우지 않고 미뤄왔다.

우리나라 가동 원전에서는 한해 750t의 고준위방폐물이 발생하고 있고, 전국에서 가동되고 있는 원전에 지금까지 2만t 가까운 양이 쌓여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특히 앞으로 10년 내 이를 보관할 폐기물보관소가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측돼 심각한 문제다. 경주의 월성 원전은 2021년 11월, 고리의 한빛원전은 2024년, 울진 한울원전은 2037년, 신월성원전은 2038년에 발전소 내 저장용량이 한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곧 포화에 이르는 월성원전은 어떻게 안전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 같은 화급한 상황인데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다시 짜기로 했다. 산자부가 지난 4월부터 재검토위원회 구성에 나서 29일 새 위원회가 출범하게 됐다. 정부는 이미 지난 2016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국민과 원전 지역 주민, 환경단체 등 핵심 이해관계자에 대한 의견수렴 부족을 이유로 재검토를 시작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중의 하나였다.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입지를 결정하는데도 1989년 첫 후보지 조사 이후 16년 뒤인 2005년에야 경주로 입지가 결정됐다. 하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사용후핵연료는 발전소 내 임시저장시설에 저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말인 2012년 논의하자며 논의 자체를 미뤘고, 박근혜 정부 들어 20개월간의 공론화를 거쳐 2016년 7월 ‘고준위 방폐물 관기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 기본 계획에는 처분부지 선정, 용지 확보 후 중간저장시설 건설과 인허가용 지하연구시설 건설, 실증연구, 영구처분시설 건설 계획과 시기 등이 담겼다.

그런데 정부는 이 기본계획을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또 얼마나 시간이 지체될지 모를 일이다. 새로 발족한 재검토위원회는 지난 정부의 기본계획을 깡그리 허물기보다 그것을 바탕으로 폭넓은 공론화 작업을 벌여야 할 것이다. 급하다고 실을 바늘 허리에 매 사용할 수는 없겠지만, 원전마다 끌어안고 있는 위험물을 언제까지 방치할 수많은 없는 일이다. 정부가 ‘탈원전’이라는 틀을 정해놓고 움직이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 전문가들이 많다. 편견을 버리고 폭넓은 공론화로 현명한 결과를 서둘러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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