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조건없이 복귀해야" vs 한국당 "사과 없이는 불가" 대립각
각종 민생법안 하세월…6월 임시국회 처리 장담 못해 비난여론 고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의원들이 30일 오후 국회 예결위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자유한국당 국회 복귀 촉구 피켓을 들고 선언문을 채택하고 있다. 연합
패스트트랙으로 인한 국회 파행 장기화로 추경은 물론 각종 민생법안 처리가 기약도 없이 미뤄지면서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비판여론이 고조되고 있다.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국회 정상화를 위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정부와 여당은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국회 복귀를 촉구하고 있지만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지정 철회와 사과 없이는 안된다는 명분 찾기에 골몰하면서 ‘식물 국회’가 한 달을 넘기고 있다.

특히,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을 심사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임기가 지난 29일 종료됐지만,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서 구성에서부터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 파행 사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예결위 공백 상황마저 벌어지면서 36일째 표류 중인 추경안 심사는 더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30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날까지 국회의장에게 새 예결위원 명단을 제출한 교섭단체는 한 곳도 없는 상황이다. 국회법상 각 교섭단체 원내대표는 상임위원의 임기만료 3일 전까지 새 상임위원 명단을 국회의장에게 제출하고 선임을 요청해야 한다.

또, 위원장 선출은 국회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국회 파행이 길어지면서 새 예결위 출범도 더 늦어질 것으로 보여 정부 추경안을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수 있을지도 현재로썬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야 간 극한 대립으로 추가경정예산안 심사조차 이뤄지지 못하면서 역대 최악의 늑장 추경이 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이 30일 6월 임시국회를 단독으로라도 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나섰지만, 한국당은 “백기 투항하라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한국당과 협상을 통해 여야 3당 교섭단체가 소집요구서를 제출하는 게 목표지만 안 될 경우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나 민주당만의 독자 소집 요구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운데)와 나경원 원내대표(왼쪽)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반면, 한국당은 민주당의 독자소집은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맞서며 여전히 패스트트랙 철회와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29일)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추가경정예산안이 하루빨리 통과되는 일”이라면서 국회에 조속한 추경안 심의 착수를 요청했다.

홍 부총리는 이날 경제관계장관 간담회에서 “지난 4월 25일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이 5월이 끝나가는 이 날까지 심의조차 시작되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면서 “이번 추경에는 미세먼지 및 산불 등 재해 대응 예산 뿐 아니라 경제현장의 수요를 반영한 사업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추경예산 등 행정절차가 미뤄지면서 올해 신규지원 목표(9만8000명)가 소진된 ‘청년 추가고용장려금’ 사업과 교육부가 2023년까지 5년간 3조5000억 원을 투입하는 학교공간혁신 사업 일정 등이 전반적으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식물 국회’로 인해 제20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심사하는 고유법안들이 무더기로 폐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법조계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현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이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에만 국회 논의가 집중돼 있을 뿐만 아니라 올해 하반기부터 각 정당이 21대 총선 준비 모드에 본격적으로 돌입하면 법안 심사를 위해 남은 시간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법원이나 검찰, 변호사 업계 등 법조계 주요 정책은 물론 국민 생활과 밀접한 민생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8일 기준 법사위에 계류 중인 고유법안은 총 1365건으로 98.3%에 해당하는 1342건은 의원들이 발의한 반면 정부가 제출한 법안은 23건(1.7%)에 불과하다. 법사위 고유법안 가운데 법안심사제1소위에 계류 중인 법안은 1128건이고, 아직 전체회의에도 오르지 못한 법안은 236건, 전체회의에 계류 중인 법안은 1건이다. 1소위에 계류 중인 법안 중에는 형법 개정안이 103건으로 가장 많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82건으로 뒤를 잇는다.

여기에 공수처 설치 법안과 수사권 조정안을 비롯해 기존에 법사위에서 논의하다가 사법개혁특별위원회로 이관된 법안도 있다. 사개특위가 심사 중인 법안 중 행정안전위원회 소관인 경찰 관련 법안을 제외한 법사위 고유법안은 모두 60건인데, 검찰청법 개정안이 18건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15건,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13건 순이다. 사개특위가 정해진 기간 안에 법안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이 법안들은 법사위로 고스란히 이관된다. 사개특위 활동 시한은 다음 달 말까지로 정해져 있다.

이처럼 심사해야 할 법안은 쌓여있지만, 여야 간 정쟁에 따른 국회 공전으로 법안 논의를 위한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국회법상 연간 국회 운영 기본일정을 정할 때는 2·4·6월 1일과 8월 16일부터 30일간 임시회를 열도록 기준을 정해놨지만, 지켜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여기에 각 상임위별로 2018회계연도 결산 심사와 함께 9월 시작되는 정기국회에서는 국정감사와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해야 하는 데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정치권은 곧바로 총선 국면으로 접어들 전망이다. 게다가 법사위는 6~7월 임시회에서 차기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절차도 열어야 한다. 다른 상임위를 통과해 넘어온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심사 역시 법사위의 몫이다. 따라서 수많은 법안이 20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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