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대 경북동부 경영자협회장
박승대 경북동부 경영자협회장

글로벌 철강무역전쟁 구도에서 갈 길 바쁜 철강업계가 모호한 법리해석으로 발목이 잡혀 지역경제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제철소 고로(용광로)설비에서 안전을 위해 휴풍 때 불가피하게 안전밸브(브리더) 개방으로 배출되는 대기오염 물질에 대해 환경당국이 조업정지라는 극단적인 행정조치를 취하면서부터다.

충청남도는 최근 현대제철 당진공장 2고로에 대해 회사 측의 의견을 듣자마자 곧 조업정지명령을 내렸다. 업계의 우려가 현실로 닥쳐왔다. 경북도도 포항제철소에 대해 10일간의 조업정지 처분 예정통보와 함께 6월 10일까지 회사 측 의견을 제출토록 했다. 광양제철소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자치단체들은 특단의 상황변화가 없다면 예정대로 조업정지 조치를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제철공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 휴풍작업이란 고로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와 가스를 안전밸브를 통해 주기적으로 배출하는 필수 절차. 이 공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화재 또는 폭발사고로 근로자의 생명도 위협받을 수 있다. 실제로 2007년 네덜란드 한 제철소에서는 고로 브리더 개방 실패로 압력이 제어되지 않아 화재가 발생했다.

물론 휴풍때는 고로 내 생성돼 있던 각종 대기오염물질이 일시적인 배출도 피할 수 없다고 업계는 말한다. 그러면서도 모든 제철소에 대한 조업정지가 확대될 경우 사실상 국내 12기의 고로를 통한 철강생산은 올 스톱해야 할 처지다. 고로 특성상 5일 이상 조업을 중단할 경우 고로 내 쇳물이 굳어 철강 잔재 처리와 재가동 준비 등에 최소 반년 이상 소요돼 고로 조업정지는 곧 고로가동 중단이나 다름없다.

50년 동안 고로를 통해 쇳물을 뽑아낸 철강업계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현재로서는 세계 어느 곳을 찾아봐도 휴풍공정을 없애는 상용화 기술이 없다. 이는 독일, 일본 등 세계 800여 제철소가 같은 상황으로 안전을 위해 100년 이상 밸브개방 프로세스를 가동 중이다. 특히 포항시민은 이번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업정지가 가동중단으로 이어지면 지역경제는 다시 헤쳐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포항경제는 2017년 지진 이후 침제수준을 넘어 아사 직전인데 이처럼 앞뒤를 따져보지 않은 일방통행식 행정조치가 취해질 경우 심각한 후폭풍에 휩싸일 것이 분명하다.

또 ‘산업의 쌀’로 모든 산업의 첨병 역할을 하는 철강산업의 위기는 조선과 자동차 가전 등 국가 핵심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철강공단 등 연관 산업의 동반추락이 우려된다

물론 정부나 자치단체가 국민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대해 단속하고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대안이라는 출구도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국가기간산업을 몰아세워서는 안 된다.

산업계에서는 조업정지라는 극단적인 공멸카드를 내놓기 전에 업계와 자치단체, 환경당국이 먼저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 출신으로 평생을 포스코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조치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많은 시민과 국민이 공감하는 출구를 찾아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더 늦기전에 말이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