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무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최상무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전 세계의 유명 오페라 극장에는 대부분 그 극장의 상주 단체인 오케스트라, 합창단, 발레단이 있기에 이들과 함께 클래식한 오페라 무대나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오페라 관련 콘서트 등 질 높은 작품을 선보이기가 용이하다. 그 외에도 오페라 극장에서 펼쳐지는 아름답고 우아한 발레 공연을 빼놓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국 런던에 있는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1732년 지어진 이후 영국을 대표하는 벤자민 브리튼, 베버 등 유명한 작곡가의 오페라가 초연된 장소이다. 이곳은 특히 로열 발레단의 공연이 전체 오페라하우스 공연 일정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발레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 극장으로도 유명하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인 발레단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영국의 로열 발레단을 필두로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마린스키발레단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에 비해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지만 고전 발레와 19세기 모던 발레를 모두 선보이기로 유명한 모나코 몬테카를로 왕립발레단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립 발레단 예술 감독인 강수진 씨와 유니버설 발레단 단장 문훈숙 씨 그리고 서울 발레시어터 전 단장인 김인희 씨 등이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 출신들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 모나코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단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 힘들 수도 있을 것이다. 1950년대 초 마릴린 먼로와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했던 전설적인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기억할 것이다. 그녀는 ‘알프레드 히치콕’감독의 영화 <다이얼 M을 돌려라>,<나는 결백하다>등에 출연하면서 할리우드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리던 여배우였다. 하지만 1956년 갑자기 프랑스 남부의 작은 나라 ‘모나코’의 군주, ‘레니에 3세’와 결혼을 발표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사실 레니에 3세는 유럽 부호들의 휴양지였던 ‘모나코’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관광객의 수가 크게 줄면서 경제 위기를 맞자 자국 내 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할리우드 스타와의 결혼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이에 레니에 3세는 그레이스 켈리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한 결과 결국 ‘행운의 2달러’ 전설을 만들면서 세기의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미국 여배우에게 엄격한 공가의 전통과 언어의 장벽은 심각한 우울증을 유발하였다. 배우로 돌아가려는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레이스 켈리는 어릴 적 꿈이었던 발레리나 육성에 전념하기로 마음먹고 1975년 ‘모나코 왕립 발레학교’를 세운다.

그레이스의 명성 덕분에 전 세계의 발레 인재들이 모나코 왕립 발레 학교로 모여들면서 국제적인 발레 학교로 이름을 드날리게 된다. 하지만 1982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그레이스 공비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의 꿈은 맏딸인 ‘카를린 공주’가 이어가게 되고 카를린은 1985년 ‘몬테카를로 발레단’을 재창건해 어머니를 추모했다고 한다. 8년 뒤인 1993년 서른셋의 젊은 발레리노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가 예술 감독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고전 발레를 재해석하는 모던 발레의 대표적인 발레단으로 독보적인 자리에 오르게 된다.

마이요는 1999년 프랑스 파리에서 초연한 ‘신데렐라’를 비롯해 ‘로미오와 줄리엣’, ‘라 벨’, ‘파우스트’ 등 40여 편의 발레 안무를 창작했으며 2008년 ‘파우스트’로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안무상을, 2015년 ‘말괄량이 길들이기’로 최고 공연상을 포함한 세 개의 황금 가면상을 수상했으며 모나코 공국의 문화 훈장과 프랑스의 예술 문화 훈장을 수여 받은 거장 안무가로 성장한다. 이처럼 실력 위주의 파격적인 인재 발굴이 작은 나라 ‘모나코’를 전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발레단을 가진 나라로 성장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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