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낙동강 전선 최후의 보루 '형산강 전투' 흔적 곳곳에
6·25전쟁 낙동강 전선 최후의 보루 '형산강 전투' 흔적 곳곳에
  • 윤석홍 시인·도보여행가
  • 승인 2019년 06월 05일 19시 4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6월 06일 목요일
  •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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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보훈의 달 기획] 포항지역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부조물

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6·25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의 최후 보루였던 포항지역의 형산강 전투는 국군은 물론 학도병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참전해 치열한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순국선열 발자취가 서려 있는 곳이다.

포항지역 주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방문을 통해 ‘나라사랑 포항사랑’을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떠할까?

순국선열의 발자취는 해도근린공원 ‘최후의 방어선’ 형산강 Walker Line → 형산강 도하작전 연제근영웅 특공대군상 → 6·25참전 유공자명예선양비 → 포항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 포항지구전적비 → 이우근 학도병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비’ → 전몰학도의용군충혼탑 →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 순으로 찾아가 보면 좋다.

아울러 송도 동빈내항의 포항함, 영천 국립영천호국원, 영덕군 장사해수욕장 ‘장사상륙전몰용사 위령탑’ 등도 방문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여기는 형산강 625 한국전쟁 최후의 방어선 Walker Line.

△포항 해도근린공원 ‘여기는 형산강 6·25 한국전쟁 최후의 방어선(Walker Line)’

포항제철소와 형산강 다리가 한눈에 들어오고, 길 건너에 형산강이 흐르고 있는 포항시 남구 해도근린공원을 찾았다. 현재 도시숲 조성 공사가 한창이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여기는 형산강 6·25 한국전쟁 최후의 방어선(Walker Line)’ 기념석비로 2009년 9월 18일 세워졌다.

6·25 한국전쟁 당시 포항지구 전투는 44일간 이어졌으며 2301명이 전사했다. 형산강 도하 작전을 통해 포항 탈환은 물론 북진 추격의 교두보를 마련한 역사적 현장으로 형산강이 아닌 ‘혈산강’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이 비석은 무게 3t에 길이 2.5m, 폭 0.6m, 높이 2m 크기의 자연석으로 ‘여기는 형산강 6·25 한국전쟁 최후의 방어선(Walker Line)’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바로 그 옆에 형산강 도하작전 호국영웅 고 연제근 영웅 특공결사대상이 보인다.
 

형산강도하작전의 호국영웅 고 연제근 상사 특공결사대상.

△형산강도하작전의 호국영웅 고 연제근 상사 특공결사대상

6·25 한국전쟁 당시 포항 탈환을 위해 형산강 도하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고 연제근 상사(1930년 1월∼1950년 9월). 연 상사는 1950년 9월 17일 3사단 22연대 1대대 분대장으로 12명의 대원을 이끌고 포항 탈환을 위한 형산강 도하작전에 참가, 총탄을 맞고도 수류탄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기관총 기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장렬히 전사한 6·25 전쟁영웅이다.

연 상사와 부대원들의 형산강 도하작전을 계기로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출하는 발판이 마련했다. 이 군상은 가로 12m, 세로 3m, 높이 5m로 지난 2010년 9월 17일 준공됐다. 바로 옆에 6·25참전 유공자 명예선양비가 있다.
 

포항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포항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다음 갈 곳은 포항시 북구 용흥동 96(탑산)에 위치한 전국 유일의 포항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이다. 해도그린공원에서 이곳으로 가려면 버스나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이 좋다. 이 기념관은 1979년 8월에 처음 문을 열었고 2002년 7월에 시설을 보완하고 확장하여 다시 개관했다. 전적물 보존·추념행사, 안보교육은 물론 6·25전쟁 당시 상황을 말해주는 다양한 전시물들이 보관돼 있어 눈길을 끌며 호국보훈 교육의 장으로 각광받고 있다.

1층 전시관에는 6·25 당시 사용했던 무기류와 유품, 전투모형, 사진패널 등 95점의 물품이 전시돼 있고, 2층 시청각실에는 ‘6·25전쟁 참상 다큐멘터리’를 시청할 수 있다. 학도의용군 창설과 연혁, 학도의용군 정신, 6·25 당시 학도의용군 참가 전투상황 등에 대해 들을 수 있다. 운영시간은 매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다. 월요일은 휴관(6월 호국보훈의 달에는 단체 관람 시 운영)이다. 관람문의와 안내는 전화(054-247-8000)로 하면 된다.

이 기념관 뒤편으로 난 역사의 계단을 오르면 전몰학도의용군충혼탑으로 가는 길이다. 계단에는 6·25 한국전쟁 발발부터 휴전 협정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기록해 놓았다. 계단을 오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포항지구전적비다.
 

이우근 학도병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비.

△이우근 학도병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비’

그 뒤에 이우근 학도병이 간직했던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비’가 자리하고 있다. 2009년 8월 11일 건립했고 영어, 일어, 중국어로 번역한 표시판도 보인다.

형산강 전투에 참가한 이우근 학도병(당시 경기 출신, 동성중 재학)도 이 전투 중 어머니께 보낸 것으로 그 당시 처절했던 전투상황을 묘사한 것을 편지에 담아냈다. 그는 1950년 8월 11일 새벽 포항 전투에서 학도의용군 71명과 함께 전사했다.

가로 2m, 세로 0.5m, 높이 1.2m 크기로 제작된 편지비에는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털썩 안기고 싶습니다’라는 등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과 전쟁의 처절함을 표현하고 있다.

2010년 이재한 감독의 영화 ‘포화 속으로’는 1950년 8월 11일 포항전투에 참전했다 전사한 학도병 71명 가운데 한 명이었던 서울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 학도병이 어머니께 미처 부치지 못한 피 묻은 한 통의 편지가 배경이 되어 영화로 만들어졌다.
 

전몰학도의용군 충혼탑.

△전몰학도의용군 충혼탑

바로 앞에 보이는 추념비가 전몰학도의용군 충혼탑이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다 되돌아보면 포항시내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매년 8월 11일 전몰학도의용군 충혼탑에서 추념식을 갖는다. 한국군 제3사단 후방 지휘소였던 포항여중(현 포항여고)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1950년 8월 11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학생 신분인 김춘식 외 70명이 전투에 참가해 47명이 산화한 것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추념 행사다.

충혼탑은 말없이 포항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그리던, 그 학도병들의 혼은 다 수습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부르던 어린 학도병들의 통곡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문득 포항여중 전투에서 산화한 이우근 학생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왜 전쟁을 할까? 충혼탑을 걸어 내려오며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한다.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포항시 전경을 바라보며 내려오면 전몰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을 다시 지나 양학고가도 아래 건널목을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돌면 철길을 걷어내고 새롭게 조성한 그린웨이 철길숲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지금은 없어진 포항역 자리에 도착한다. 코레일이 포항역을 철도기념물로 지정했지만 소중한 문화유산이 개발논리에 의해 말없이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울 뿐이다.

새로 만들어진 도로를 건너 계속 가면 서산터널이 나오고 도로를 다시 건너 포항초등학교 담장 따라 걷다 보면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입구에 다다른다. 덕수공원 안내판이 보이는 오르막길을 오르면 된다. 잘 정비된 길을 오르면 포항시 북구 덕수동 산 4-3번지에 있는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이 시야에 들어온다. 도심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체험학습을 위해 초등학생들이 많이 찾아오고 시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다.

이 충혼탑은 6·25전쟁 당시 전사한 포항 출신 2068위의 호국영령 위패를 모시기 위해 1964년 6월 25일 건립해 세 차례의 개축과 확장을 했지만 2013년도 6월에 21.5m 충혼탑, 군인 6인상 2개와 부조 1면, 위패 봉안실, 부대시설 등을 새롭게 조성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위패 봉안실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위패봉안실 모습.

위패봉안실에는 6·25 전쟁사와 치열했던 포항지역 전투를 배우고 안보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돼 있으며,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산화한 지역 호국영령들의 이름이 명각돼 있어 역사의 흔적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6월 한 달간 충혼탑 전시실과 위패봉안실을 개방한다고 한다.

충혼탑 오른쪽으로 난 언덕을 오르면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도 만날 수 있다.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

수도산 충혼탑에서 내려와 왼쪽으로 돌아 산책로 따라 걸어가 길 끝 큰 도로를 두 번 건너 포항여자고등학교 정문 오른쪽에 ‘학도의용군 6·25 전적비’가 있다. 포항시 북구 학산동 212-1번지다.

1977년 건립됐다가 노후화로 인해 2016년 11월에 6·25 한국전쟁의 상황을 묘사한 벽화를 아트타일로 새겨 넣고 이우근 학도병의 편지 내용을 새로 만드는 등 추모 공간을 새롭게 조성하였다. 펜 대신 총을 든 김춘식 외 47명의 꽃다운 청춘이 장렬하게 산화한 포항 전투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 전적비다.

1950년 8월 11일 적의 수중에 떨어진 도시에 남은 학도의용군 71명이 조선인민군 육군 766유격대와 벌인 전투이다. 최후까지 결사항전에 나섰던 포항 전투는 6·25 한국전쟁 전사에 길이 빛나는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국군의 날 제정 유래

6·25 한국전쟁 당시 학도의용병으로 포항전투에 참여했던 고 최기영 포항지역 6·25 참전학도의용군회 상임고문은 생전에 “8월 23일 적의 공격으로 당시 포항시가지는 완전히 폐허로 변했고 군번도 계급도 없는 학도의용군은 그야말로 총알받이나 마찬가지였다”며 “하지만 당시 44일간의 포항전투에서 승리한 3사단 23연대가 제일 먼저 10월 1일 휴전선을 돌파한 것을 기념해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됐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에 파병되어 희생된 장병 등을 기리는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웰링턴 국립묘지 벽면에 새겨진 ‘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 풍요로움과 번영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지난날 국권회복과 조국수호를 위한 애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 위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겨볼 일이다.
 

6·25참전 유공자 명예선양비

그 밖에도 포항시에는 구룡포 충혼탑, 미해병대 제1비행단 전몰용사충령비, 포항고등학교 호국학도충의탑, 천마산, 도음산 산림문화수련장 도음산전투 위령비, 흥해읍사무소 반공애국자위령비, 송라면 한미 해병대 충혼탑, 5인해병순직비, 지경검문소 반공희생자 위령비, 비학산 용화사 기계안강전투 전몰장병 위령탑, 고 육군대위 권태흥위령비, 동해초등학교 고 이상득 육군하사 공적비, 무공수훈자전공비 등이 있다.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덕수공원(수도산) 충혼탑 부조물
반공순국청년동지위령비
전몰학도의용군 충혼탑 가는 역사의 계단.
포항지구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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