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앉아 있다, 여기를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사람이 있다
내가 가져본 적 없는 우리 집에서 그 사람과 나는
가질 수 없었던 추억을 미래로 던지며 없는 개를 길렀다
지붕 아래 많은 약속을 속눈썹처럼 떨어뜨렸다
그 사람이 흘리고 간 속눈썹 하나쯤은 정말 머물러 있을 것이어서
나는 없었던 개를 나지막이 불러보며, 신전처럼 고요히 앉아 있다
유일한 내 것을 지키는 중이다
혹시나 미래가 유실했을지도 모를 내방(來訪)을 기다리고 있다
하나쯤은 떨어져 있어야 할 속눈썹이 놀라 달아나지 않도록
가져본 적 없는 우리 집을 나는 과묵한 개처럼 지킨다
마음의 내방(內方)에 누구도 들인 적 없는 이에게는
추억이 없다, 마음 놓고 아플 수조차 없다는 거
그게 가장 따뜻한 추억이다 추악했음마저 그리운 그때
무풍지대로 흔들리며 잠자는 빈집에서
가진 적 없는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배우며
폐허의 신전으로 나는 앉아 있다




<감상> 애초에 가진 적이 없는 것은 잃어버릴 수 있다는 걸 배운 가정교육 덕분에 나는 폐허 상태로 앉아 있다. 내가 살고 있음에도 빈집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랑하는 그대가 떠났기 때문, 우리의 집이 될 뻔 했는데 사라진 인연 때문, 떨어진 추억의 속눈썹 하나 겨우 건져야 하기 때문이다. 동경했던 수많은 미래들은 그대를 따라 떠나갔을까. 그대 떠난 빈자리가 너무 짙기 때문에 가장 따뜻한 추억은 남아 있고, 추악(醜惡)마저 그리운 것이다. 곁에 없는 그대를 영원히 사랑하므로 그대의 내방(來訪)을 기다리며 빈집 아닌 빈집에 나는 앉아 있다.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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