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는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감상> 시인이 수많은 추억들을 지워버려서 집이 텅 비어 버린 걸까요, 문을 잠그고 가엾은 내 사랑(기억)을 빈집에 가둬둔 것일까요, 사랑하는 그대가 떠나서 빈집이 될 수밖에 없는 걸까요. 결국 빈집은 잃어버린 사랑에게 쏟았던 모든 추억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므로 슬픔이 가득한 시인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이별은 예비할 수 없어 느닷없이 찾아오고, 사랑한다는 말과 편지를 전하지 못했는데 공포처럼 찾아옵니다. “잘 있거라”라고 힘껏 소리쳐도 고백 한 번 하지 못한 나의 사랑은 미련으로 가득 차 있을 겁니다. 모든 추억과 결별을 선언하면서도 빈집에 갇혀 허우적대는 나의 서러운 사랑이여! <시인 손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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