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초 형! 내가 지금 있는 곳은 경주읍에서 불국사로 가는 도중의 십리허(쯤)에 있는 옛날 신라가 번성할 때 신인사(神印寺) 고지(古址·옛터)에 있는 조그만 암자이다. …석초 형! 혹 여름에 피서라도 가서 복약이라도 하려면 이곳으로 오려무나. 생활비가 저렴하고 사람들이 순박한 것이 천 년 전이나 같은 듯하다. 그리고 답하여라. 나는 3개월 정도 더 이곳에 있을 것이다.”

육사가 경주 남산의 옥룡암에서 요양하면서 시인 신석초에게 보낸 편지의 부분이다. 육사는 석초 보다 5살 위지만 벗을 높여서 불러 ‘형’이라 썼다. 이 편지를 쓴 날이 7월 10일로 돼 있다. 육사는 1942년 2월 경주시 안강읍 기계리의 이영우씨 집에 와서 요양하다가 나중에 옥룡암에서 약 1개월 머물렀다. 석초에게 보낸 편지에는 3개월 정도 머물 것이라 했지만 일경의 감시가 심해 오래 머물지 못했다.

육사와 옥룡암에서 함께 지낸 이식우(1995년 취재 당시 81세·경주중고등학교 설립자인 이수봉의 손자)는 “육사가 1942년 어느 무덥던 여름날, 옥룡암에 홀연히 찾아왔다. 아무런 행장도 없이 모자를 쓰고 지팡이를 짚고 나타났다”고 했다. 이식우씨는 서울중동고등학교 재학시절 육사를 처음 만나 5~6년 동안 가끔 씩 이야기를 나눌 만큼 막역한 사이였다. 육사는 당시 경주에서 요양하면서 일경의 눈을 피해 포항까지 가서 우국지사들을 만났다.

육사는 지인이 있던 포항 나루끝(현재의 북구 학산동)에서 나룻배를 타고 영일만을 가로질러 도구리에 도착해 미쯔와(三輪)포도농장에서 며칠 동안 은밀히 모여 포도주를 마시며 밀담을 나눴다. 도구리의 미쯔와포도농장이 있던 곳은 지금의 해병대 1사단이 있는 곳으로 동해 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구릉 위에는 온통 포도밭이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육사의 명작 ‘청포도’의 이미지가 그려진 배경이다.

육사의 고향 안동시가 경북도 특화사업으로 도산면 토계리에 ‘청포도’ 시를 모티브로 한 와이너리를 완공, ‘264 청포도 와인’을 본격 생산 판매한다는 소식이다. 매우 뜻깊은 데다 맛과 향도 좋다고 한다. 스토리가 있는 경북 관광상품으로 각광받을 전망이다.
 

이동욱 논설실장 겸 제작총괄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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