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사람이면 누구나 교언영색(巧言令色·듣기 좋은 말을 하고 아첨하는 표정을 지음)하는 이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인간의 도리를 아는 자가 드뭅니다. 그래서 종국에는 그들이 남긴 실망이나 절망으로 고통받습니다. 생각해 보면 간단합니다. 도리를 아는 자들은 굳이 그렇게 말을 꾸미고 표정을 고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다 인정을 받기 위함인데(사적인 욕심을 위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자기 스스로 당당하고 떳떳한데 굳이 듣기 좋은 말과 보기 좋은 표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좋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에 쏙쏙 드는 말로 가득 차 있는 책들은 언젠가는 반드시 실망이나 절망을 안기고 내 곁을 떠납니다. 그런 책들보다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자기 할 말만 또박또박 하는 책이 훨씬 더 유익한 책입니다. 가장 좋은 책은 열기가 겁나는 책입니다. 글자 하나하나가 내 폐부를 찌르는 책이 가장 유익한 책입니다. 옛날부터 전해지는 성인의 말씀이라고 해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고 해도 책 속의 모든 말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의 인용이 그런 경우입니다.

…혜자(惠子)가 장자(莊子)에게 말했다. “위왕(魏王)이 큰 박씨를 주기에 그것을 심었더니 크게 자라 5석(石)이나 들어갈 정도로 큰 열매가 열렸소. 거기에 물을 담자니 무거워 들 수가 없고, 둘로 쪼개서 바가지로 쓰자니 납작하고 얕아서 아무것도 담을 수가 없었소. 확실히 크기는 컸지만 아무 쓸모가 없어 부셔버리고 말았지요.” 장자가 말했다. “선생은 큰 것을 쓰는 방법이 매우 서툴군요. 송(宋)나라에 손 안 트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소. 그는 (그 약을 손에 바르고) 대대로 물로 솜 빠는 일을 가업으로 이어왔소. 한 나그네가 그 소문을 듣고 약 만드는 방법을 백금(百金)으로 사겠다고 하자, 친척을 모아 의논하기를 <우리는 솜 빠는 일을 대대로 해 오고 있지만 수입은 불과 몇 푼에 불과하다. 이 기술을 팔면 단박에 백금이 들어온다. 그러니 팔도록 하자> 하였다오. 나그네는 그 약 만드는 법을 가지고 오왕(吳王)을 찾아가 설득했소. 마침, 월(越)이 쳐들어오자 오왕은 이 사람을 장군으로 삼았는데, 겨울에 월군(越軍)과 수전(水戰)을 하여 크게 그들을 무찔렀소. (월군은 손 트는 고통 때문에 가진 전력을 십분발휘할 수 없었다) 오왕은 그 공적을 높이 사 그 사람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소.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일은 매 한 가지였으나, 한 사람은 그 기술로 영주(領主)가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고작 솜 빠는 일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그쳤소. 그것은 그들이 같은 것을 가졌으나 쓰는 방법이 달랐기 때문이오. 지금 선생에게 5석이나 들어가는 박이 생겼다면 어째서 그 속을 파내 큰 술통 모양의 배를 만들어 강이나 호수에 띄워 즐기려 하지 않소. 즐길 생각은 않고 그저 납작해서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는 걱정만 하고 있으니 그게 바로 선생의 마음의 병통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장자’, ‘소요유(逍遙遊)’’

‘솜 빠는 일’을 가업으로 하는 자와 겨울철 수전을 미리 대비하는 군사전략가를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는 위의 이야기는 사실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가진 것(손 안 트는 약 제조 기술)은 같은 것이 아님이 분명한데도 장자는 같은 것이라 우깁니다. 그리고 듣는 우리는 그 견강부회가 재미있습니다. 마음에 쏙 듭니다. 우리는 사람살이가 균등하기를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할 때가 있고 부자인 사람도 불행할 때가 있기를 바랍니다. 늘 요행을 바랍니다. 하찮은 기술 하나가 벼락출세의 수단이 되길 원합니다. 그런 허황된 심리에 영합하면 그게 바로 교언영색입니다. 아무리 성인의 말씀이라도 다 곧이곧대로 믿을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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