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좋은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갈망한다. 이는 행복을 추구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 후기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사대부가 기거할 만한 터에 대한 조건들을 제시하고 있다. 풍수와 경제, 인심, 풍광 등 네 가지다. 네 가지 가운데 풍수와 풍광은 일면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집을 지어 살기에 좋은 양택(陽宅·집터, 마을의 터)은 대부분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풍광이 좋은 곳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살기 좋은 곳의 조건은 개인의 생활 패턴이 변화에 따라 다양하다. 한 때 출퇴근 하기에 편리한 지하철 역과 가까워 인기라는‘역세권’이 유행했다. 이 때 사용된 ‘~세권’이란 용어가 무한 진화하고 있다. 강이 보이는 아파트촌이 ‘강세권’, 호수 옆엔 ‘호세권’, 숲 언저리에 있으면 ‘숲세권’ 식이다. 좋은 학군에 가까우면 ‘학세권’, 맥도날드 햄버거 가게가 가까우면 ‘맥세권’, 심지어는 삼성 공장 인근에 있으면 ‘삼세권’이 된다.

얼마 전부터는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와 가까운 ‘스세권’이 유행하더니 최근 서울 성수동과 삼청동 일대를 ‘블세권’이라 부른다고 한다. 해외 유명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인 ‘블루보틀’이 입점해서다. 이 커피점의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평균 5시간이라니 무슨 일인지 의아할 정도다. 그간 다른 지역에 비해 침체 됐던 삼청동 일대가‘블루보틀 현상’이라 불릴 정도로 상권이 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블루보틀’이 ‘스타벅스’처럼 집객효과로 인근 지역 상가 활성화에 기여하는 ‘키 테넌트(Key tenant·핵심 점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인근 부동산 소개소에는 “무조건 (블루보틀) 옆으로 얻어 주세요”하는 전화가 쇄도한다는 소식이다. 나중에 권리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포항에는 철로가 옮겨가고 철길 숲이 가꿔진 이후 ‘숲세권’의 특수를 누리고 있는 아파트가 인기다. 지진 영향으로 포항의 다른 지역 아파트는 값이 내렸지만 이들 아파트는 오히려 값이 올랐다고 한다. 살벌한 돈 놀음의 ‘스세권’이나 ‘블세권’ 보다 숲이 가까이 생겨서 행복한 포항 철길숲 주변은 소박한 ‘숲세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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